좋은인연/세상 이야기

★ 꿈에본 내고향 ★

무너미 2009. 7. 2. 20:04

 

꿈에 본 내 고향 

 

고향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람 외에 산천이라는 자연도 포함이 되기에 고향산천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고구(故丘 : 옛 언덕)·고리(故里 : 옛 마을)·고산(故山 : 옛 산)·가향(家鄕 : 집 있는 마을)·벽향(僻鄕 : 먼 외진 고을)·향리(鄕里 : 고향 마을)라고도 불렀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관(出鄕關)·이향(離鄕),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며, 그런 사람은 나그네요 그 삶은 타향살이며 그의 고향 그리는 시름은 향수(鄕愁)며, 객수(客愁, 旅愁)라 하였다.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ㅡ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스위스에 가면 하임베 플루(Heimweh Fluh)라고 하는 몹시 아름다운 산을 볼 수 있다.

이 산에서 계곡과 마을의 호수와 눈 덮인 산을 바라보는 절경은 정말 너무도 아름답다.

그런데 여행자들은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마음속에 고향을 생각하기에 이 산을

향수의 산 (Home Sick Mountain)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고

여행이 즐거워도 인간은 끝내 고향을 잊을 수 없는 것이라 한다.

 

20여 년도 더 넘은 오랜 세월의 고단한 이민 생활을 통하여 때로는 지치고 힘들고,

간혹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각색 모양으로 고국으로 또는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을

보게 되거나 아니면 저 죽음의 나라로 보내게 될 때 , 그런 때에는 다 떨쳐버리고

정말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뭉클 떠올라 먼 하늘을 쳐다보며

하염없는 생각에 잡히곤 한다.

 

고향에 돌아온 것이 본 마음이면 귀향(歸鄕)이요, 어쩔 수 없으면 낙향(落鄕)이라 하였다. 이로써 보면 고향에 대해서는 그대로 눌러 사는 사람과 떠나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과 마침내 돌아가는 사람 등으로 분류가 된다.

그 상황에 따라 실로 다양한 단어가 있음은 한국인의 고향에 대한 심성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다. 이는 고향을 떠난 사람이 주로 국내에 있는 경우이지만, 다른 나라에

가 있을 때는 좁은 고향 땅과 넓은 우리 나라 땅이 겹쳐서 고향이 곧 고국이며 조국이며

모국으로 확대된다. 이때 고국을 그리는 교포는 타국살이이며, 일제강점으로 인한

경우는 망국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란 객지살림·타향살이·타국생활이 고단하면 상대적으로 평안하고 포근하고 아름답고 부모형제와 선산(先山)이 있는 고향 땅을 그리게 마련이며, 바깥생활이 풍족하면 고향을 잊어버리는 법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을 부모와 조상의 묘가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런 대화는 한국인의 고향관을 단적으로 표시한다. “이몸이 삼기실 제 님을 따라 삼기시니……”라는 조선시대 정철(鄭澈)의 〈사미인곡〉 첫머리에 있는 말대로 탄생이 ‘삼기다·삼다’이기에 고향은 출생지로서 ‘삼터’가 되고, 타향이나 객지가 아니기에 본향 이다.

 

백령도 북쪽 두무진이라는 곳에서 보면 7㎞ 북방이 황해도의 돌출 부분인 장산곶이며 몽금포인데, 그곳에 70세가 넘은 어부가 있어 물으니 “여기가 고향이 제일 가깝기 때문에 눌러 사는 것이오. 이 나이가 되어도 물에 들어가는 것은 저기 빤히 보이는 장산곶 우리 마을인 앞 백사장에 내 몸이 닿은 바닷물이 찰삭거리리라는 뜻이라오.”라고 비장하게 말하였다.바닷물은 국경선을 무시한다는 실향민의 술회는 한국인의 고향의식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갈 수는 없는 고향에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가서 살겠다는 의지가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이 노래는 육이오 전쟁으로 남북이 휴전선으로 막혀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오도가도 못 하는 수백만 실향민의 사연과 한을 담아 노래한 것이지만 요즘은 어쩌다 해외로 이민 와서 낯 선 나라에서 정착하느라 삶에 지치고 어느새 훌쩍 흘러버린 세월을 돌아보며 고국이 그리운 사람들한테도 찡하고 가슴을 올리는 노래 중의 하나이다.

 

고향을 떠나 온지 몇몇해련가

타관땅 돌고돌아 헤메는 이 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을 차마 못 잊어

 

돈이 있는 곳을 찾아 살기 위하여 고향을 등지고’, ‘정들면 고향이니 도시 가서 외국 가서 뿌리를 내리고’, ‘젊은 사람은 나가서 벌어야지.’,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랬지.’, ‘돈이 몰린 곳에 사람이 몰리게 마련’, ‘도시 발전에 먼저 참가한 자가 유리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논리가 팽배하였다.

 

 

도시에 정착한 세대는 전반기 농촌(지방이라고 확대한 뜻이다.), 후반기 도시라는 두 가지 경험을 가져서,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복잡한 귀향 활동을 일으키고 고향 사람을 만나서 향수를 달랜다. 설이나 추석 때 귀성객의 모습을 보면 잘 알 것이다

  

고향생각 / 이은상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요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도시로 떠나온 사람은 이전 어릴 적의 고향을 생각할 때 ‘고정된 이전 모습’을 바꾸지 않았는데, 실제로 고향 땅에 가보면 거기도 적잖이 변하였기에, 고향의 꿈은 깨어지고 배신당한 것 같고, 귀중한 보물을 도둑맞은 것 같고, 고향을 방문한 자기는 늙지 않았는데, 고향 사람만 늙었다는 착잡한 생각에 빠진다.

골목친구·동기동창·선후배·불알친구·꾀복장이동무(어려서 같이 옷벗고 컸다는 뜻) 네것 내것 없이 자란 친구라는 말이 여기에 합당한 것이다.

 

향수의 달밤 / 노래 김희갑

 

어연간 몇해던가 청춘도 가고

집없는 나그네 타향살이 서럽구나

땅을 치고 울어봐도 다시 못 갈 내 고향

북쪽 하늘 바라보며 담배 연기 뿜어본다

 

아~ 이러한 밤이면

낯설은 주막에 쓰러져 뼈아픈 족속의 설움을

또 다른 나그네와 더불어 울부짖어며

생각은 다시 이북의 남겨둔 처자를

미칠듯이 못내 그리는 피어린 향수의 눈물을

나는 언제까지나 흘려야하는...

 

언제나 가보려나 그리운 가족

쓸쓸한 나에겐 쪼각달도 눈물인가

가슴치고 통곡해도 다시 못 볼 내 처자

북두칠성 바라보며 애절이도 흐느끼네

 

1970년도 내가 근무하던 H 은행 을지로 지점에 간혹 나타나서 최 ㅇㅇ 지점장 실로 들어가서 차를 한잔 대접하는 지점장과 환담하던 인기 연예인 김희갑 선생의 모습이 눈 앞에 가물가물 떠오른다.

 

홀쭉이와 뚱뚱이로 짝을 이루어 50년대 말부터 60년대를 풍미하였던 인기 연에인 김희갑씨와 최지점장의 딸이 당시 이화여고 같은 반에 다니고 있어서 딸들의 친교를 통하여 두 사람이 서로 친해졌다는 뒷얘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듬해 소위 임원으로 출세하는 정통코스라는 영업부장으로 영전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어 '은행원이 힘 없는 것이 억울하다' 며 한강에서 투신 자살한 최지점장의 운구행렬을 따라가며 친구의 마지막을 전송하며 눈물 뿌리던 김희갑씨가 이북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애절한 음률로 불러 힛트했던 노래가 이 향수의 달밤이다.

 

내 기억에는 정확히 어떤 곡인지는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지만 이 노래 말고도 더 많은 노래를 취입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아련하게 남아 있다.

 

내 고향산천 - 草莽 / 朴東國 -

 

내 고향 거진(巨津)은 물방게 떠 오르는

논 자락 샘터가 있고

옹고지떼 노니는 따뜻한 논도랑물

꼬불꼬불 바닷가로 이어진다네

 

밤이면 부엉이 우는 고장

갈갈이 울음이 시샘을 놓고

철석이는 파도가 있는 내고향 거진(巨津)은

 

힌섬이 우뚝하니 서서

바닷가 향하는 마음을 막아 버티고

서낭당 등대는 반짝이며 오라오라

지나는 길손배 손짖을 하는 데

 

넘지말라 넘지말라 넘지를 말아라

태백산맥 영세(嶺西)로 넘지를 말아라

예맥의 땅을 지키며 옹기종기 모여앉은

초가집들이 산모퉁이마다 앉아있고

소 여물 끓일때 쯤 모락모락 오르던 굴뚝 연기

여기가 내고향일세 나른나른 하늘로 오른다

 

산더덕 산도라지 산동백 산목련

버찌 뽕오두 산딸기 머루다래

철마다 피어올라 군입질 진창이던 세월

가을이면 피어 오르던 송이 싸리버섯

 

아리아리아리랑 쓰리쓰리쓰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를 넘겨주소...

산나물 캐며 부르시던 님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묻어 있는 곳

고초당초 맵던 시집살이 우리님 가신 자리

눈 감으면 삼삼이 떠오르는 고향

핏줄이 흐르는 곳

 

지척이 몇천리인가

님이 아니계시니 맞는이 없구뇨

타향이 외로움이니 구리움만

고향산천 헤메이는구뇨.

 

영세 - 領西 (영동 사투리)

옹고지 - 영동지방에서 논도랑물에 사는 민물고기

갈갈이 - 산짐승(여우종류)

 

객지 생활이 어려울수록 고향은 그립고 객지에서 고독할수록 고향 사람은 절절한 정을 준다. 고향의 경험은 추억이 되는데, 그 추억은 기쁘고 슬프고 무서운 것이 강력한 법이다. 그 중 무서운 것은 고향 마을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출처: 해지는 태평양 저너머로
blog.chosun.com/padosori (매일로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