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휴전협정일
오늘이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서명 됨으로써
3년 1개월에 걸친 승리 없는 전쟁은 막을 내린 날입니다.
북괴군의 불법 남침으로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아군은
1950년 9월 28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서울을 탈환, 계속 북진하여 1950년 10월 20일 평양을 점령, 통일을 눈앞에 두었으나 1950년 11월 17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유엔군은 오산까지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1951년 1월 15일 유엔군은 대반격 작전을 개시, 1951년 3월 4일 서울을 재탈환하고, 1951년 3월 24일에 38도선까지 진격하였습니다.
1951년 3월 12일 미 제8군 사령관 리쥬웨이 장군은
"38도선에서 휴전이 된다면 유엔군의 대승리" 라고
말한 바 있으며, 미국정부도 38선 이북으로 진격하는 문제를 유보하면서 휴전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51년 6월16일 Trigbri 유엔사무총장이 한국전의 휴전을 정식제의 하였으며, 6월 27일에는 Gromyko 소련 외무상이 휴전관련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미국 정부는 소련의 제의에 대해 검토 후
휴전회담 가능성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1951년 6월 29일 유엔군 사령관 리쥬웨이 장군으로 하여금 휴전을 제의토록 지시를 하달하였습니다.
미정부로부터 지시를 받은 리쥬웨이 사령관은 1951년 6월 30일 방송을 통하여, 공산측에 휴전을 위한 연락관 접촉을
원산항에 있는 덴마크 병원선에서 가질 것을 제의하자,
공산측은 1951년 7월 1일 방송을 통하여 개성에서
접촉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북측의 제의를 받아 드려 개성에서 회담을
가지고 몇번 회담을 하다가 나중에는 판문점에서
수십차례 회담을 하고 총 765회의 회담을 갖고 드디어
1953년 7월 25일 휴전협정을 체결하였습니다.
휴잔협정이 체결된지 벌써 56년이 되었습니다.
당시 전쟁으로인하여 350 만이 희생되고 전 국토는
황무지로 페허화되었으나 우리국민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의 결정체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 12 권의 경제대국을 이루었고
올림픽대회 월드컵대회등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으나
아직까지 변하지않은것은 정치적 발전을 이루지못하였고
남북간의 화해가 이루어 지지못하여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불안속에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