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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대왕의 화성 행궁1

무너미 2010. 12. 27. 10:53
정조 대왕의 효심이 만든 행궁 ----화성행궁 (1)----    2010/12/19 09:22  
 

화성행궁은 조선 후기조사및 사회문화의 변화를 살필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며 발굴조사및

복원정비 사업을 통해 행궁의 모습을 재현 할수 있게된 중요한 문화유적 으로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크다.

정조시대 실학정신을 바탕으로 위민과 개혁을 실천 하고저 한 역사적 공간이자

혜경궁 홍씨의 회갑 진찬연을 베풀었던 효의 상징적 공간이며 세계 문화 유산인 화성의 중심축이다.

 

자료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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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대에서 걸어서 15분쯤 내려오니 화성 박물관이 있고 그곳을 지나서 휜히 보이는

광장을 들어서니 눈아래 부조가 새겨진 바닥이다.

 

신풍루사미도 그림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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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 진찬도의 일부.

 

위의 부조가 남성들의 공적인 모임의 자리라면

이곳은 궁녀들의 가무를 연상 시킨다.

화려한 타일에 색을 넣어 구워서 이렇게 바닥을 만들었다니 수원시의 정성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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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의 앞마당이다.

위민정치(爲民政治) 와 문화행사가 이루어졌던 광장 이었다.

전통사회의 마당과 현대의 광장을 접목시켜 탄생한 새로운 문화 공간 이다.

임금님께서 내리신 쌀을 받고 기뻐하는 백성들을 표현한 신풍루사미도 (新豊樓賜米圖) 및

봉수당 진찬도(奉壽堂進饌圖) 등이 도자판(陶資板) 으로 표현되어 있다.

200 여년전 정조대왕이 백성과 하나되는 자리를 만든 이곳은 행궁과 성곽 성밖의 다양한 문화접속을

가능케하는 출발점이자 과거, 현재, 미래를 소통 시키는 열린 휴식공간 이다.

(안내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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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본 행궁의 전경.

봉수당, 복내당, 유여택,신풍루,남북군영,우희관, 득중정등 600여 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행궁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왔으며 정조대왕께서 모친 혜경궁홍씨의 진찬연을 열었던 궁이기도 하다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인해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물들이 사라져 버렸지만

시민들의 복원추진위원회에 의해 1996년 복원공사가 건립되어 2003년 일반 공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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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1790년에 세워졌으며 1795년 정조가 행차 했을때 친히 신풍루 앞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의 왕실 행차도는 조선 최대의 행사였고 한강에 배를 이어 만든 다리를 놓는등 장관 이었으며

단원 김홍도 등이 이 행차도를 그려 지금도 전해진다.

정조는 배를 빌려준 이들에게도 정확한 사용료를 지불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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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정당(正堂)인 봉수당으로 가기위해 거치는 세번째문.

처음은 신풍루, 두번째, 좌익문, 세번째가 이곳 중양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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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 전경.

임금의 행차시 정전(正殿)으로 쓰인 건물로 왕권을 상징 하는 편전 공간으로 연출하였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정조가 "만년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 는 의미의 봉수당(奉壽堂) 이라는 당호를 지어 건물의 현판에

쓰면서 부터 이건물을 봉수당이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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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사저를 엿보는 기회를 갖는다. 

아기자기한 기물들이 모두 너무 예쁘다.

오른쪽 자리에선 임금이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를 다 기록 하던 자리였었나?

용상의 뒤에 있는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 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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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대왕의 처소.

정조대왕이 화성행궁 행차시 신하를 접견 하고 쉬던 장소 였다.

임금의 공부하시는 모습이 왕의 위엄과 학자로서의 고결한 성품이 함께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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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 에서의 진찬연

1795년 을묘원행시 정조 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드리고 있고

여관( 女官) 들은 왕과 혜경궁 홍씨를 보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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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의 툇마루는 무척 넓다.

툇마루이기보다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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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 뒷곁을 담아 보았다.

후일 다시 갔을때 좀더 자세히 돌아보았더니 재미있는 궁궐의 살림살이를

좀더 깊숙히 볼수가 있어서 흥미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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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여택

평상시에는 화성유수가 거처하는곳으로 쓰이다가 임금이 행차하면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 하는곳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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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정리소.

임금이 행차시 화성행궁의 모든 행사를 담당하는 관청 이다.

정리사가 행사의 준비를 위해 행사 기물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장면을 연출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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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사가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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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남북 군영이 있는데 이곳은 남군영이다.

친군위의 기마병이 살면서 지키는 건물 이다. 1789년에 지어졌고 1794년에 증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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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당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의 노후 생활을 꿈꾸며 지었다는 건물이다.

마당가에 있는 우물이, 여염집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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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당 뜰안에 서있는 멋진 나무 한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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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헌.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연 기간중 과거시험과 양로연등 여러행사가 치뤄진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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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이상된 노 거수로 화성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한 나무로

행궁 건립당시 화재에 의해 불탔으나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서있다

 

행궁은 왕이 전란이 났을때 피신하거나 휴양이나 왕릉 참배의 목적으로 지방에 행차할때 

잠시 머무르는 궁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참배 하기위해 만든 행궁 이었다.

평상시에는 수원부사가 일하는 관아로 , 왕의 행차시에는 왕의 거처로 이용되어

궁궐과 관아가 복합된 형태.

정조가 죽은 후에 순조가 화성행궁 바로옆에 화령전을 지어 정조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역대 왕들이 자주 찾아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