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불교 문화

중앙박물관 본관 앞과 마당에도 국보와 보물이 있다.

무너미 2011. 11. 9. 16:02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내부에 전시된 유물들 말고도 본관 앞과 마당에도 국보와 보물을 비롯한 많은 석조유물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유물들을 보지 않고 국립박물관을 갔다 왔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석조불교유물이 발달한 나라이다. 내부에 전시되지 않았지만 소중한 석조유물들이 박물관 마당에도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남계원 칠층석탑 (국보 제190호)

경기도 개성 부근의 남계원터에 남아 있던 탑으로, 예전에는 이 터가 개국사(開國寺)의 옛터로 알려져 개국사탑으로 불려져 왔으나, 나중에 남계원의 터임이 밝혀져 탑의 이름도 남계원칠층석탑으로 고쳐지게 되었다. 1915년에 탑의 기단부(基壇部)를 제외한 탑신부(塔身部)만 경복궁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원 위치에 대한 조사 결과 2층으로 구성된 기단이 출토되어 추가 이전해 석탑 옆에 놓았다가 다시 복원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세워져있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길항사 삼층석탑(국보 제99호)

갈항사 터는 김천시 남면 오봉리 금오산 기슭에 있었던 사찰이다.

신라 효소왕 때 승전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건립 연대와 폐사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여기에서 승전은 승도를 거느리고 《화엄경》을 강설하였다.

절터에 남아 있던 2기의 3층석탑(국보 99)은 현재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에 야외에 있다.

 

현재 이 절터에는 오봉리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45) 및 쌍탑을 옮긴 표석 2기가 있을 뿐, 밭으로 변하였으며, 간혹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다.

보물 제166호 -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사현사의 옛터에 있던 탑으로, 시가지 확장을 하면서 1970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보물282호 고달사쌍사자석등

고달사지는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절은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되어 신라시대 이래 나라 안 큰 사찰 세 곳 중 하나인 고달원(高達院)이었는데, 누가 창건했으며 언제 폐사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천수사(泉水寺)오층석탑

이 탑은 강원도 원주의 천수사로 추정되는 절터에서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진 후 199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탑의 형태는 6층으로 기단부의 아래층 덮개돌 밑부분은 현재 없어졌다.

탑신의 몸통과 지붕은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었고 지붕의 네모서리에는 풍탁을 단 흔적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이 네개씩 남아 있다.

탑신의 높이는 2층부터 급격히 낮아져 있고, 처마 밑의 층단 받침은 각층 모두가 3단을 이루고 있다.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석탑의 여러 곳에는 심하게 훼손된 흔적이 있다. 이 석탑은 고려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천수사(泉水寺)삼층석탑

탑의 몰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는 통일신라 석탑에서 보이는 2층기단 형식이다. 탑신부 몸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 졌으며, 1층과 2층탑신아래에는 굄돌이 놓여져있다. 지붕처마 층단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고 지붕의 윗면은 경사가 완만하다. 상륜부에는 네모난 지붕모양장식만 남아있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영전사지보제존자사리탑 (令傳寺址普濟尊者舍利搭) (보물358호)

고려 후기의 승려인 보제존자의 사리탑으로, 모두 2기이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세워졌는데, 보통 승려의 사리탑과는 달리 석탑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보제존자(1320∼1376)는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화상으로, 신륵사에 그의 사리탑이 남아 있으나 제자들에 의해 영전사에도 따로 사리탑을 세운 것이다.

안흥사오층석탑 (安興寺五層石塔)

안흥사 오층석탑은 경기도 이천시의 안흥사 절터에서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진 후 현재 국립박물관 야외석조전시장에 옮겨 세워졌다.

 

탑의 형태는 이층기단 위에 세워진 오층석탑으로 상. 하층 기단의 벽면에는 1개의 사이기둥과 2개의 귀기둥이 새겨져 있다.

기단의 덮개돌은 2장의 돌로 맞추어 졌으며 탑신의 높이는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든다.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석탑 각부의 비례가 규형 있게 조화되고 있어 통일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364호 - 나주서문석등

본래 전라남도 나주읍 서문 안에 있던 것을 1929년에 경복궁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는 3단을 이루는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네모난 모양의 널찍한 바닥돌 위에 세워져 있으며, 아래받침돌은 8각이고 연꽃문양이 새겨져 있다. 기둥모양의 중간받침은 8면으로 각 면마다 테를 둘러 공간을 만들고 그 중심 안에 한 줄씩의 문장을 새겼다. 윗받침돌은 8각면에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조각했고, 화사석은 새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창이 4개다. 지붕돌은 매우 장식적으로 8개 면마다 처마 끝에 짧은 막을 드리운 것처럼 세로줄무늬가 있고, 그 위로 막 피어오르는 형상의 꽃장식이 두툼하게 달려 있다. 지붕돌 위로는 마치 지붕을 축소해 놓은 듯한 돌이 올려져 있고, 맨 꼭대기에 올려진 연꽃봉오리모양의 돌은 석등을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든 것이다.

 

 

받침에 새겨져 있는 기록을 통해 고려 선종 10년(1093)에 석등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둔중한 편이나 지붕돌의 형태가 장식적인 공예기법을 보이고 있는 특이한 고려시대 작품으로, 통일신라시대 8각형 석등의 양식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구조와 조각이 우수하다.

현화사 석등

고려 현종 10년에 개성 현화사에 세운 석등이다. 규모가 큰 이 석등으로 미루어 당시 국가 대찰로 창건된 현화사의 명성을 짐작할수 있다. 일반적으로 석등의 불발기집은 팔각으로 된것이 많은데 이 석등은 사각이며 불빛 창도 따로 없이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여 있다. 석등앞에 있는 배례석은 공양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등공양을 할때 예를 갗추기 위해 만든 것이다.

현화사지에는 칠층석탑 외에 당간지주·비·석교 등이 있으며, 석등은 일제강점기에 서울로 이전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190호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居頓寺圓空國師勝妙塔)

이 승탑은 강원도 원주시 거돈사지(居頓寺址)에 있던 것인데 1948년 거돈사터에 남아 있던 고려 전기의 승려 원공국사의 사리탑으로, 일제시대에 일본사람의 집에 소장되고 있던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원공국사는 고려 태조 13년인 930년에 출생하여 현종 9년인 1018년에 입적한 고려 초기의 고승이다

보물365호 흥법사 진공대사 탑과 석관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原州 興法寺址 眞空大師塔 및 石棺)

진공대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과, 그 옆에 놓여있는 돌로 만든 함이다.

본래는 강원도 원주의 흥법사터에 있었으나 1931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 ·고려초에 활약한 승려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신라 신덕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특히 고려 태조의 두터운 존경을 받았다.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

보물 제361호인 대경대사 현기탑비는 원래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보리사지에 있던 것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들어서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탑비의 전체 높이는 3.5m, 비신의 높이는 1.76m.이다.

이 탑비는 대경대사가 입적한 후 9년이 지난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공적 등이 새겨져 있는데,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썼으며, 제자인 최문윤이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보물382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

봉림사는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봉림리에 있던 통일신라 말기의 사찰로 진경대사가 스승인 현욱대선사를 개조로 추대하여 가야불교 초전법륜 성지인 자리에 진례성 봉림산 봉림사로 개창하여 세운 절이라고 합니다.

이 보월능공탑은 봉림사지에 있던 것을 일본 강압기인 1919년에 탑비와 함께 경복궁 경내로 옮겼왔다가 지금의 용산 박물관으로 옮겼다.

이 탑은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아 기단위에 탑신부와 지붕돌, 상륜부를 올린 높이 2.9m의 부도인데 전형적인 8각의 부도이지만 다른 것에 비해 표면의 조각이 적은 편이라 재료의 빛깔과 아울러 총초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 탑과 한 쌍을 이루고 있는 부도비의 건립연대인 924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傳)흥법사지 염거화상탑. 국보 제104호

(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傳) 原州 興法寺址 廉居和尙塔)

 

염거화상탑은 일본에서 회수되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한국 문화재에 대한 도굴, 약탈이 많았다.

처음 흥법사에서 도굴되어 일본으로 건너간 이 염거화상탑은 서울의 탑골공원, 경복궁 등지로 옮기면서 이곳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팔작지붕에 기왓장으로 덮은 구조에 기와의 끝에는 '수막새'까지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탑은 원래 강원도 흥법사터에 서 있었다 하나,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탑이름 앞에 ‘전(傳:∼라 전하다)’자를 붙이게 되었고, 원래 위치에서 서울로 옮겨진 후에도 탑골공원 등 여러 곳에 옮겨졌다가 경복궁에 세워졌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