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

가슴으로 읽는 시 / 느낌

무너미 2012. 3. 31. 10:46

가슴으로 읽는 詩

느낌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종이 위에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 이성복 (1952~ )

 

 

대고모가 집에 오면 집안 분위기가 든든해진다. 보름날 밤이면 마당이며 옥상이며 한길가가 다 흥성흥성하다. 때 아닌 맞선이라도 보자 하여 못 이기 척 나설 때 길가의 가로수 들은 갑자기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무엇이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을 부풀게 한다. 그 분위기, 귀하디귀한 느낌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그것은 다 달아나버리고 만다. 그러니 우리들 인생에 대한 ‘설명이란 얼마나 수가 낮은 것인가. 나아가 제설명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자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허망한가.

 

꽃나무에 꽃이 필 때, 그것도 ‘처음’ 꽃이 필 때 무엇이 왔다고 말 하는가. 오랜 기도의 응답이라고 해도 대리라. 그 꽃이 질 때 신(神 )은 처음으로 뒷모습을 조금 보이시리라. 흰 종이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남은 얼룩, 어느 느낌이 다녀간 비틀린 얼룩, 우리 모두의 자서전이 그러하리라.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출처: 조선일보 2012.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