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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울은 복어국 먹는 계절

무너미 2012. 4. 21. 06:25

 

 

[가슴으로 읽는 한시] 서울은 복어국 먹는 계절

 

서울은 복어국 먹는 계절(億洛中河豚羹· 억낙중하돈갱)

 

봄철은 한강에서 복어 잡는 계절

복사꽃 필 무렵 그 시절이 그리워라

기름 치고 미나리 삶아 꿀물에 썩어

맛 좋은 국물 나눠 손님들께 대접했었지

이곳에 멀리오니 어느 누가 입에 댈까

지난날 흥겹던 일이 전생처럼 아득하다

가슴 가득한 객수를 누구에게 터놓을까

창가에 홀로 앉아 시나 한수 짓노라

 方春漢水釣河豚 億在挑花未發辰

 (방춘한수조화돈 (억재도화미발신)

 芹煮香油和甘汁 羹分美味餉嘉賓

 (근자향유화감즙) (갱분미미향가빈)

 遠來此地誰沾口 却夢前遊若隔塵

 (원래차지수첨구) (각몽전유약격진)

 滿腔客懷誰與語 晴窓只可覓詩新

 (만강객화수여어) (청창지가멱시신)

 

-권상신(權常愼)·1759~1824)

 

 

1824년 대사헌으로 있던 권상신이 순조의 비워를 건드려 평안도 영변으로 귀양을 갔다. 봄과 여름을 영변에서 보낸 그는 음력 3월 복사꽃이 필 무렵이 되자. 불현 듯 고향이 그리워졌다. 그 무렵이면 한강에는 복어가 많이 잡혀 요리를 잘하는 집에서는 손님을 청해 복어국을 대접하곤 했다. 서울에서 복어국은 봄철의 대표적인 풍미(風味) 가운데 하나였다. 시인도 복어 국을 즐겨 먹는 미식가의 한 사람이었으리라, 그런데 귀양지 영변에서는 복어 국을 잘 먹지 않았던 듯, 그는 불쑥 복어 국이 먹고 싶어졌다.

 

입맛 그것도 고향의 입맛은 다른 어떤 것 보다 더 감각적이다. 지금 쫌이면 서울에서는 복어를 잡아 벗들과 어울려 제철음식을 즐기며 시끌벅적할 텐데···, 복어국의 향기와 맛은 친구들을 불러 함께 먹을 때 맛이 더 해진다. 객지에서 입맛을 쩍쩍 다시며 시인의 외로움은 한층 깊어진다.

(조선일보 4월 21일)

안대회 성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