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

[가슴으로 읽는 시] 녹음

무너미 2012. 4. 30. 06:47

 

[가슴으로 읽는 시] 녹음

 

녹음

 

 

무거워 보인다.

잎새 하나마다 태양이 엉덩이를 깔고 누웠는지

잎새 하나마다 한 채 눈부신 궁궐이다

그 궁궐 호수도 몇 개 거느리고 번쩍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

위로 위로 쏘는 화살처럼 휘번뜩거리는데

이런 세상에 이 출렁이는 검푸른 녹음의 새빨간 생명들이

왁자지껄 껴안으며 춤추며 뭉개며 서로서로 하나로 겹쳐지는데

무지 실하다

공(空)으로 가기 위해 힘을 불리고 있는 중인가.

-신달자(1948~ )

 

한창 꽃철 산골에서 하룻밤 묵는 날인데 마침 비바람이 친다.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그 유명한 밤바람 소리, 꽃 다 지겠네(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라는 구절 그대로다. 시가 있어 그나마 꽃이 다 지는 아쉬움은 덜하다. 그 옛날의 인간 성정(性情)이 지금 우리 마음 그대로임을, 그래서 천년을 사이에 두고도 교감하고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꽃이 지자 꽃자리에 녹음이 밀린다. 연록색 새 잎사귀들이 일제히 튀어 나오니 들어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안이 놀라워라. 궁궐이다. (잎맥 속의 그 서까래를 보아라!) 궁궐은 다시 나뭇가지 전채의 호수가 되고 호수 위로 낱낱의 이파리는 튀는 물고기다. 탱탱한 생명의 상승 상승, 위로만 쏜 화살처럼 도약의 기운으로 넘쳐난다. 녹음 밀리는 지금 여기 나뭇잎 하나 속에서 발견하는 우주(空)의 파노라마가 가히 숨 가쁘다. (조선일보 4월 30일)

 

장석남 시인 하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