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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 기억해 내기

무너미 2012. 5. 9. 06:27

 

 

 

[가슴으로 읽는 시] 기억해 내기

 

기억해 내기

 

혼자

 

진채

내게 배송된 꽃,

 

발송인을 알 수 없던 꽃,

 

그꽃을 기억해 냈다.

슈베르트 음악제가 한 달간 열린

알프스 산간 마을

한가로이 풀꽃에 코 대고 있는 소 떼들이

목에 달고 다니는 방울

그 아름다운 화음에서

 

                               -조정권(1949~ )

피어나는 꽃들이 감탄을 부른다면 떨어진 꽃은 명상을 낳는다. 꽃을 온전히 보려면 피는 때의 흥겨움만 말고 처연히 지는 꽃길도 터벅터벅 걸어보아야 하리라. 지는 꽃은 눈으로 보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 때 그 꽃은 누군가 내게 어떤 편지로서 보낸 것만 같으리라. 인간의 문자 아닌 꽃의 문자로 이어지는 길고 흐린 사연들 경(經)이 따로 있으랴.

 

시간이 흘러 어느 이국(異國)의 골짜기에 나는 있고 한가로운 소들의 목에 단 방울소리들이 찬란히 풀꽃들을 피워내고 있는 그곳에서 언젠가 만났던 꽃들, 낙화(落花)의 풍경을 기억해 본다. 여기, 이 평화의 화음(和音)에서 발송되었던 꽃들이였구나! 회통(會通)하는 우주의 호흡! (조선일보 5월 9일)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