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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싸우는 개 鬪狗行(투구행)

무너미 2012. 6. 16. 06:18

 

 

[가슴으로 읽는 한시] 싸우는 개 鬪狗行(투구행)

 

싸우는 개 鬪狗行(투구행)

 

뭇 개들 사이좋게 지낼 때는         衆狗若相親(중구약상친)

꼬리 흔들며 잘도 어울려 다니지     搖尾共行止(요미공행지)

누가 썩은 뼈다귀를 던져주었나      誰將朽骨投(수장후골투)

한 마리 일어나자 우르르 달려들어   一狗起衆狗起(일구기중구기)

으르렁 거리며 서로 싸우네         其聲狺狺狋吽牙(기성은은의우아)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어

소란스럽네                        大傷小死何紛紛(대상소사하분분)

추우(騶虞)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所以貴騶虞(소이귀추우)

하늘 위 구름에 높이 누워 있어서지  高臥天上雲(고와천상운)

 

                                        ―조지겸(趙持謙·1639~1685)

 

 

조선 숙종 때 소론(少論)의 거두였던 조지겸의 우언시(寓言詩)다. 동물의 행태를 통해 인간사를 말하려는 의중이 행간에 드러난다. 평소에는 친한 듯 지내다가도 뼈다귀만 발견하면 목숨 걸고 싸워 차지하려고 드는 개들의 모습에는 이익이 나타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낚아채 가려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덧씌워져 있다.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영상이다. 그러나 그 싸움에서 승자는 없고 모두가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스무 살 전후의 젊고 패기 찬 선비의 눈으로 보니 정계의 진흙탕에서는 개싸움이 다반사였다. 훗날 당쟁의 일선에 섰던 그도 한때는 구름 위 높이 누운 전설의 짐승 '추우(騶虞)'처럼 살리라 다짐했으리라.

(조선일보 6월 16일)

안대회·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