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2. 8. 24. 06:21

 

[가슴으로 읽는 시] 님

 

 

가랑잎 한 잎

마루 끝에 굴러들어도

님 오신다 하소서

 

개미 한 마리

마루 밑에 기어와도

님 오신다 하소서

 

넓은 세상 드넓은 우주

사람 짐승 풀벌레

흙 물 공기 바람 태양과 달과 별이

다 함께 지어놓은 밤

 

아침저녁

밥그릇 앞에

모든 님 네게 오신다 하소서

 

손님 오시거든

마루 끝에서 문간까지

마음에 능라 비단도

널찍이 펼치소서.

 

- 김지하(1941 ~     )

 

 

시를 가르치다 보면(시를 가르치다니!) 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되묻는다. 너는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이해가 가느냐고. 저 꽃밭에 핀 꽃들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하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본다.

 

이 여름의 뜨거움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염천 허공에 제 목청을 터져 뿌리고 있는 말매미들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마주할 뿐이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들뿐.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된다는 관념 정도. 좀 큰 것은 이해의 대상을 넘어선다.

 

아침 밥상을 마주한다. 밥이 어디서 왔지? 고마운 농부의 손에서 왔다고 가르쳐서는 만의 하나만 가르친 것이다. 전 우주(全宇宙)의 화음으로 온 것이다. 다만 물음이 있을 뿐. 그 손님(물음)이 오시거든 기쁘게 기쁘게 '능라'를 펼쳐야 한다. 그게 곧 구원이니까! (조선일보 8월 24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