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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동시] 비닐우산

무너미 2012. 11. 1. 06:50

 

 

[가슴으로 읽는 동시] 비닐우산

 

비닐우산

 

구멍가게에서 산

비닐우산

 

빗길로

나오면서 펴들면

먹구름 갈라지며

언뜻 내비친

파란 하늘

 

맑은 하늘 밑에 잠시 서서

즐겁게 듣는

소나기 소리

 

아. 구멍가게에서 산

파란 하늘

머리 위에

동실동실 띄우고

빗길을 갑니다.

 

빗소리도 데리고 갑니다.

 

                            - 전병호(1953~       )

 

 

우리는 길을 가다 가끔 갑작스레 소낙비를 만날 때가 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채 비를 만나면 흠뼉 비를 맞아야 한다. 그럴 때 가게나 전철입구 우산 장수한테서 허름한 우산을 사서 펴 들면 문득 먹구름이 갈라지고 언뜻 파란 하늘이 내비치는 것 같다.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싸구려 우산이지만 고맙기 짝이 없다. 우산을 쓰고 가면 빗소리도 재잘거리는 새소리나 친구의 말소리 같아 정겹게 들린다. 파란 하늘을 머리에 동실동실 띄우고 빗소리를 친구 삼아 데리고 가는 빗길이 즐겁기만 하다.

 

하찮은 비닐우산 하나로 빗길이 즐거워지고 빗소리가 친구처럼 가까워진다는 발견이 빛난다. 이 동시는 소낙비처럼 갑작스레 어려운 경우를 당했을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비닐우산처럼 파란 하늘이 되어주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조선일보 11월 1일)

이준관·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