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인연/생활 주변 이야기

어리석은 고추 도둑

무너미 2013. 2. 15. 16:55

 

어리석은 고추 도둑

어리석은 고추 도둑

 

어떤 사람이 고추를 도둑질하다 들켜서 원님 앞에 끌려갔다. 도둑의 어리석음을 잘 알고 있는 원님은 고추 도둑에게 매를 100대 맞든지, 벌금 100냥을 내든지, 고추를 100개 먹든지 세가지 벌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고추 도둑은 마누라 몰래 숨겨 놓은 100냥이 있었지만 혼자만 알고 있는 돈인지라 내 놓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이 100냥을 밑천으로 노름을 하거나 장사를 해 벼락부자가 될 생각도 했었던지라 더더욱 이 돈을 내 놓고 싶지 않았다.

 

어떤 벌을 고를까 고민하던 도둑은 평소에 고추를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지 고추 100개를 먹겠다고 선언했다. 먹는게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고추를 한 20개 쯤 먹고 나니 입만 아니라 창자까지 곧 터질 것 같았다. 눈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나오고, 100개는 커녕 50개만 먹어도 죽을것 같았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먹고 훔칠 생각을 했던 자기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까지 고추의 매운 맛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고추 먹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돈 100냥은 너무 아까웠다. 그 놈의 돈 때문에 고추를 훔쳤고 결국 이 벌을 받게 된거 아닌가? 원님의 자비로운 허가를 받고 고추대신 매를 맞기로 했다. 아프긴 하겠지만 참으면 되고, 한 이틀 푹 쉬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매를 한 20대 쯤 맞으니 볼기가 터져 피가 나고 하늘이 노래지는 것이 여기서 곧 죽을 것 같았다. 100대는 커녕 50대도 맞기 힘들어 보였다. 돈이고 고추고 일단 사람이 살고 난 후에야 값어치가 있지 않겠는가?

 

결국 도둑은 원님의 허락을 받고 돈 100냥을 내고 풀려났다. 헛된 욕심에 고추도 먹고, 매도 맞고 벌금도 낸 후에야 풀려난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매우 교훈적이다. 나도 가끔 그런 실수를 하고 모든 사람이 그런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포기해야 할 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다 결국 노력, 시간, 돈만 날리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재판을 2심, 3심 심지어 헌법재판소까지 끌고가는 사람도 많다. 상대방의 논리, 권리, 증거 같은 것은 아예 무시하고 자기 논리, 자기의 증거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좀 불리하더라도 판사를 잘 만날 수도 있고 전관예우의 악습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잔꾀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웃 일본에 비해 소송 건수와 재판 건수가 100배나 높다고 한다. 사고방식이 합리적이라면 고추 도둑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노름, 복권, 경마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활률로 따지면 거의 가망이 없는데도 운수가 좋으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아까운 돈 다 날리고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사람은 상대적으로 이런 사행에 빠져드는 경우가 적다.

 

사업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고추 도둑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냉정하게 계산하되, 특히 가능한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고려해서 시작하지 않고, 우선 잘 될 것 같아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큰 돈을 투자하다 거덜나는 것이다. 고추의 매운 것, 매의 아픈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벌금 아끼는 것만 집착한 고추 도둑의 어리석음과 닮은 꼴이다.

 

자기가 어리석어 안 먹어도 될 고추를 먹고 안 맞아도 될 매를 맞는 것이야 어떻게 하겠는가마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다른 사람들까지 억울하게 고추 먹고 매 맞게 하는 도둑들이 수두룩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는 우리가 공공 기관과 정부에 고추 도둑들이 판을 치고 있는지를 항상 살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손봉호 / 전대학 총장, 교수, 철학가 / '칼럼&Story'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