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3. 9. 7. 06:00

 

 

 

[가슴으로 읽는 한시] 그림자

 

影(영)    그림자

 

倐去忽來每夜因(숙거홀래매야인)    훌쩍 갔다 문득 오며 밤마다 나타나고

非仙非鬼又非人(비선비귀우비인)    신선도 귀신도 아니고 또 사람도 아니네.

隔簾無語渾難接(격렴무어혼난접)    주렴 너머 말이 없으면 알아보기 어렵지만

得月相隨故欲親(득월상수고욕친)    달이 뜨면 뒤를 따라 절친한 척 다가오네.

怳惚初疑燈下客(황홀초의등하객)    등불 아래 손님인가 황홀하게 의심하고

依稀還作水中身(의희환작수중신)    물에 비친 나인 듯이 어슴푸레 보이네.

子虛蹤跡尋無處(자허종적심무처)    헛것의 종적이라 찾으면 간데없어

更向梅窓問假眞(갱향매창문가진)    매화 핀 창가에서 진실을 물어본다.

 

―홍한주(洪翰周·1798~1868)

 

 

19세기 문인 해옹(海翁) 홍한주가 온갖 사물을 읊은 연작시의 하나이다.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낮이고 밤이고 그림자가 자신을 따라다녔다. 그림자는 늘 나란 존재를 자신에게 각인시켜주는 또 다른 나였다. 내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애쓸 수도 있었고, 외로울 때면 내 그림자를 향해 삶을 물어볼 수도 있었다. 불빛이 휘황하여 그림자가 내 뒤를 따르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사는 시대이다. 그림자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옛 시인이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