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3. 12. 27. 05:42

 

 

 

가슴으로 읽는 동시  창

 

 

창 바깥엔 흰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데

 

바알간 창문에

아기 그림자 비쳤다

 

밤 한 톨 구워 달라 조르는 게지

대추 한 움큼 조르는 게지

 

사박사박 눈길 위에

강아지 한 마리 지나가는데

 

바알간 창문에

엄마 그림자 비쳤다

 

밤 한 톨 구워서 주려는 게지

대추 한 움큼 주려는 게지

 

―박화목(1924~2005)

          ▲유재일

 

눈 내리는 겨울밤에 밤 한 톨 대추 한 움큼 달라고 조르는 아기와 엄마 그림자가 비치는 창문이 참 따스하다. 밤 한 톨 대추 한 움큼 먹고 난 아기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옛날 옛날 옛적에…' 엄마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밤은 더욱 깊어가고 창 바깥에는 눈이 소복이 쌓였으리라. 어쩌면 배고픈 노루새끼가 먹을 것을 찾아왔다가 창문의 불빛을 바라보고 갔을지도 모른다.

 

오래전의 흑백사진 같은 풍경을 담고 있는 이 동시를 읽으면 창문의 '바알간' 불빛처럼 마음이 훈훈해진다. 흰 눈 내리는 밤 창문의 불빛이 눈 속에도 얼지 않은 붉은 겨울 열매처럼 정겹다. 창문에 사랑의 불빛과 그림자가 비치는 한 우리들의 겨울은 춥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가 밀려와도.

 

이준관 |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