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4. 1. 2. 22:13

 

 

 

가슴으로 읽는 시 설산 가는 길 2

 

설산 가는 길 2

 

식당에도 여관에도 장마당에도

인간의 상품보다는

하늘나라 물건이 흔하더군

 

세숫물도 목욕물도

신과 짐승과 사람이 함께 쓰더군

 

물건 참 오래 쓰고 곱게 쓰더군

만년(萬年) 묵은 눈이

아직도

새 것이더군

 

―윤제림(1960~        )

          ▲유재일

 

눈 덮인 이국(異國)의 준봉(峻峰)을 오르는 행렬이 있다. 고도가 높아 하늘에 일층 가깝다. 문명과 이익을 짜게 재는 시장과는 일층 더 멀어졌다. 자고 먹고 사고파는 물품이 모두 천산물이다.

 

눈 녹은, 맑은 찬물로 신(神)도 짐승도 사람도 목을 축이고 몸을 씻는다. 한 바가지의 물도 공공의 물건이자 대자연의 선물. 여인들은 밥을 짓고 빨래를 처덕이겠지. 물뿐이겠는가. 우주가 하나의 큰 꽃인 것을.

 

설산 마을에서는 내키는 대로 엄벙덤벙 마구 쓰지 않으니 오래되어도 너절하거나 헐지 않았다. '만년(萬年) 묵은 눈'이 '새것'처럼 여전히 깨끗하고 빛나는 순백의 숫눈이다.

 

엄동에 설산처럼 인류가 흰 이마 위에 이고 지녀야 할고고(孤高)하고 신성한 정신을 생각해보노라니 오늘 이 아침이 문득 새롭고 산뜻하다.

     문태준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