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4. 1. 20. 07:27

 

 

 

가슴으로 읽는 시조 눈 내리는 밤

 

눈 내리는 밤

 

땅의 부끄러움을 이미 다 보았거니

굳이 남은 것들을 들추어 무엇하리

하늘이 무명옷 한 벌 밤새 지어 입힌다.

 

지상에 은성(殷盛)하는 어둠보다 더 큰 사랑

한없이 다독이며 안아주는 용서 앞에서

아기의 젖니가 돋듯 태어나는 세상이여.

 

달과 별이 숨었어도 스스로 차는 밝음

나무들 하나같이 뿔 고운 순록이 되어

한잠 든 마을을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조동화(1948~ )

 

 

섣달에는 눈이 참 많이 쌓였다. 그렇게 눈보라 치던 고샅도 가래떡 흰 김이 오르면 불현듯 훈훈해졌다. 눈을 밟으며 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다니는 날은 몸 마음이 새록새록 하얘지곤 했다. 그때의 '뽀득뽀득', 그 순결한 소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도심의 눈은 지상에 닿자마자 시커멓게 변하는 무슨 오욕(汚辱)처럼 빨리 치워야 할 대상이 돼버렸다.

 

그래도 한밤의 눈은 여전히 축복이다. 낮의 허물을 다독이는 밤의 정화(淨化)다. 모든 것을 덮는 하늘의 용서다. 그래서 아침이면 악다구니 세상도 '아기의 젖니가 돋듯' 새로 태어난다. '나무들 하나같이 뿔 고운 순록이 되'는 눈 내리는 밤, '한잠 든 마을'의 순결한 평화 속을 걷고 싶다. 한 마리 순록이 된 양 두고 온 시간의 숲 어딘가로―.

 

정수자 |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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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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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