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4. 6. 30. 07:03
가슴으로 읽는 시 화엄경
화엄경
새싹은 하나의 이념 가장 깊이 이르러서 가장 얕은 곳으로 올 줄 아는 이의 약속이다 우주 이래, 지구 이후 흘러온 기억이 개화할 때 쪼그려 앉아 귀를 세우고 아주 멀리서 왔으므로 무척 작아진 소리를 듣는다 우주에서 음표 하나가 빠져나와서 이토록 작고 푸르다 불가사의는 하찮게 실현되고 이념은 클수록 소박하다 햇볕 속에 단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고 음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김주대(1965~ ) ▲유재일
새로 돋아나는 푸른 싹은 하나의 기적이다. 작고 여린 새싹은 비록 얕은 곳에서 태어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멀고 깊은 곳으로부터 왔다. 아득한 우주로부터 이곳까지 왔다.
소란과 이별과 죽음의 바닥으로부터 그 끝에서부터 다시 왔다. 큰 슬픔을 앓은 폐허의 가슴으로부터 다시 왔다. 다시 와서 스스로를 열어젖히고 갱신한다. 소박하게 첫 번째 자리로 돌아와서 미래를 쌓아올린다. 힘을 다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서는 손을 털고 크고 허허로운 허공으로 주저 없이 돌아간다.
오늘이 막막해 주저앉은 그대여, 돌아와 다시 숨 쉬며 살아 있는 새싹을 보아라. 이제 그대는 다시 그대를 회복할 시간이다.
문태준 | 시인 [출처] 프리미엄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