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4. 7. 11. 06:45

 

 

가슴으로 읽는 시조 대

 

 

맑은 바람 소리

푸르게 물들이며

 

어두운 밤 빈 낮에도

갖은 유혹 뿌리쳤다

 

미덥다

층층이 품은 봉서

누설 않는

한평생

 

-김교한(1928~ )

 

                                        ▲유재일

 

대나무들은 언제 봐도 헌걸차다. 특히 한여름 대숲의 울울창창한 위용에는 하늘도 움찔거리는 듯하다.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될 무슨 깊은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건만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사귀들이 부딪치며 빚어내는 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대숲을 두른 남도의 집들에 홀린 적이 많다. 최고의 풍광을 이루며 때때로 댓잎에 흐르는 노래까지 보내주곤 했으니 말이다. 그 또한 남도만의 선율이려니 싶었다. 대나무는 그렇게 남도 땅의 노래요 서슬 푸른 봉기(蜂起)인 양 새겨졌다. 그러고 보면 대나무는 악기이자 무기다. 잘 다듬어 불면 대금 같은 악기인데, 깎아서 세워 들고 나서면 죽창이라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대쪽'도 대나무 성정에 딱 어울리는 오래된 비유다. 쪼개질지언정 휘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층층이 품은 봉서'를 '누설 않는 / 한평생'이라니! 대쪽 같은 일생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세태에 종장의 묘미까지 꼭꼭 쟁인 마디가 참으로 미덥고 눈부시다.

 

정수자 | 시조시인

[출처] 프리미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