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우거에서
가슴으로 읽는 한시 蓼寓雜律(료우잡률) 공주 우거에서
蓼寓雜律(료우잡률) 공주 우거에서
富貴曾思力(부귀증사력) 부귀를 이뤄보려 꿈도 꾸면서 少時未信天(소시미신천) 젊을 적엔 운명을 믿지 않았지.
事何多背意(사하다배의) 하는 일마다 어찌 그리 뜻과 다른지 人已向衰年(인이향쇠년) 몸은 벌써 나이 든 축에 들어가누나.
聽木臨風岸(청목임풍안)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잎 스치는 소리도 듣고 觀身坐石泉(관신좌석천) 개울가에 다가앉아 물 위에 뜬 얼굴도 살펴본다.
白衣飄野逝(백의표야서) 도포 자락 휘날리며 들판을 가는 이 遙認孟生員(요인맹생원) 멀리서도 맹 생원인 줄 바로 알겠네.
서명인(徐命寅·1725~1802)
▲정인성
18세기의 시인 서명인(徐命寅·1725~1802)이 1763년 잠깐 공주에 내려가 있었다. 우연히 사건에 휘말려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냈다. 무료하게 지내려니 밑도 끝도 없이 온갖 생각이 일어난다. 지금은 포기했으나 한때는 부귀를 쟁취하겠다고 애쓴 적도 있고, 운명을 믿지 않고 덤빈 적도 있다. 그러나 뜻대로 된 일 하나 없이 이제 곧 40줄이다. 발길 가는 대로 언덕에 올라 잎새에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도 보고, 개울가에 앉아 얼굴을 뜯어보기도 한다. 그 순간 흰 도포 자락 펄럭이며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이 보인다. 맹 생원이다. 저리 가는 것을 보면 좋은 일이 있어 들뜬 기분일까? 그는 아직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안대회 |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프리미엄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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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저것도 인생
사람들은 옷을 입은 채로 바닷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옷을 입은 채 바닷물에 빠지는 것도 인생이다.
- 전경린의 산문집 <나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