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4. 10. 15. 08:18



가슴으로 읽는 시 수평선


수평선


무현금이란 저런 것이다

두 눈에 똑똑히 보이지만

다가서면 없다, 없는

줄이 퉁 퉁

파도소리를 낸다

시퍼런 저 한 줄

양쪽에서 짱짱하게 당겨진

밤이면 집어등이 꼬마전구들처럼 켜져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는

저 한 줄, 바다 한가운데 드니

구부러져 둥근원이 되었다

아득하게 트인 감옥이 되었다

배가 바다의 배에 배를 얹고

젖을 빨다 까무룩

잠이 든다


―손택수(1970~ )

                        ▲일러스트 : 이철원


먼 바다는 옹크리고 앉아 있다. 옹크리고 앉은 바다에 뱃길을 빌려 배를 타고 멀리 나가본 적 있다. 바다의 그 끝으로 나아가고자 한 적 있다. 물과 하늘이 맞닿는 경계를 찾아서. 감감한 둘레이며 커다란 원이며 물의 울타리인 수평선을 만나기 위해서. 가장 단순한 '저 한 줄'에 이르기 위해서.


그러나 나아가도 바다의 끝은 없다. 다시 바다의 한가운데에 이를 뿐이다. 그곳에서 동서남북의 방향은 사라진다. 물로 가득 찬 망망대해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아득하게 트인 감옥'에 갇힐 뿐이다. 한 척의 배는 바다의 팽만한 복부 위에 떠 있을 뿐이다. 바다가 이처럼 왕왕(汪汪)할진대 이 우주는 얼마나 끝없이 넓고 깊은가.

문태준 | 시인

[출처] 프리미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