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5. 5. 27. 04:40
[가슴으로 읽는 시조] 나-무
▲일러스트 : 이철원 |
나-무
소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오동나무 촉촉하게 푸르게 살아 있는 동안은 나-무라 불리지 않는다 무슨무슨 나무일 뿐
초록색 파란 것, 말랑말랑 촉촉한 것 꿈꾸고 꽃피고 무성하던 젊은 날 다 떠나 보내고 나서 나-무가 되는 나무
나무는 죽어서 비로소 나-무가 된다 집이 되고, 책상이 되고, 목발이 되는 나-무 둥기둥 거문고 맑은 노래가 되는 나-무
-김동찬(1958~ )
나무들은 아무리 봐도 눈부시다. 날로 싱싱 내뿜는 신록의 새 빛! 맑은 산소부터 다 주고 가는 나무의 생은 성자(聖者)로 추앙받아 마땅하다. 나무로 자라기까지, 늙거나 베이거나 |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그 사후에까지 나무는 제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간다. 휴지며 의자며 책으로 생을 바치는가 하면, 천년도 넘게 살며 인간의 역사를 적기도 한다.
큰 나무 밑 지날 때 숙이지 않을 수 없는 연유다. 특히 '무슨 무슨 나무일 뿐'이던 나무들이 '나-무'가 되는 과정은 아름답고 지극하고 성스럽다. 아픈 자의 '목발'도 '맑은 노래'도 되는 나무. 목발로 오월을 건너며 나무 아래 나무의자에 앉아 그것을 불성(佛性)이라 불러본다. 해탈 또한 나[我]가 무(無)가 될 때 그러하려니-.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