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5. 6. 13. 05:48
[가슴으로 읽는 시] 거리
▲일러스트 : 김성규 |
거리
이쯤이면 될까. 아니야. 아니야. 아직 멀었어. 멀어지려면 한참 멀었어. 이따금 염주 생각을 해봐. 한 줄에 꿰어 있어도 다른 빛으로 빛나는 염주알과 염주알, 그 까마득한 거리를 말야. 알알이 흩어버린다 해도 여전히 너와 나, 모감주나무 열매인 것을.
ㅡ나희덕(1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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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은 측량하기 어렵다. 어느 때에는 한 뼘의 거리도 까마득하고, 어느 때에는 천 리도 한달음에 달려갈 정도로 가깝다.
염불할 때 손으로 돌리는 염주가 여기 있다. 한 줄로 꿴 염주라도 탱탱하고 둥글둥글한 염주알은 각각 다르다. 생김생김도, 빛깔도 각각 다르다. 이 다름을 거리로 잰다면 막막할 뿐이다. 그러나 줄이 툭 끊어져 꿰어 있던 염주알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더라도 각각의 염주알이 모감주나무 열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같음을 거리로 잰다면 지척(咫尺)이다.
오늘은 꽃바구니를 본다. 꽃바구니에는 여러 종류 여러 송이 꽃이 있다. 색색의 꽃들이 모여 화사한 생기와 화음(和音)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도 그처럼 이 세계에 있다.
문태준 시인
[출처] 조선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