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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한시] 객지의 밤 가을의 상념

무너미 2015. 9. 18. 20:42

[가슴으로 읽는 한시] 객지의 밤 가을의 상념

 

旅夜秋思(려야추사)

 

廢卷坐蟲聲(폐권좌충성)

秋宵已數更(추소이수경)

節物侵鄕色(절물침향색)

燈光入客情(등광입객정)

遠學悲慈母(원학비자모)

歸耕愧友生(귀경괴우생)

惻惻無誰語(측측무수어)

長歌激不平(장가격불평)

 

        객지의 밤 가을의 상념

 

 책을 덮고 앉았더니 풀벌레 우는 소리

가을밤은 한참 전에 자정을 넘겼다.

이 고장 풍경은 가을빛에 물들었고

나그네 심사는 등불빛에 젖어든다.

멀리 떠나 공부하자니 어머니 불쌍하고

돌아가 농사를 짓자니 친구 보기 창피하다.

서글픈 마음 누구에게 말을 걸까?

불평이 솟구치는 노래 길어만 간다.

 

                  ▲일러스트 : 김성규

조선 정조·순조 연간의 선비 수산(睡山) 이우신(李友信·1762~1822)이 가을철 여행 중에 썼다. 아마도 집을 떠나 공부하러 멀리 가던 길이었던가 보다. 여관에 앉아 책을 펼쳤더니 마음이 싱숭생숭, 풀벌레 소리 듣다 보니 밤이 벌써 깊다. 창밖 너머는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이 좋은 철에 객지에서 등불을 마주하니 제쳐두고 있던 고민과 갈등이 더 부푼다. 출세하려면 이렇게 멀리 떠나 공부하는 것이 옳은 것 같기는 한데 나이 드신 어머니 고생은 나 몰라라 하는 짓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포기하고 귀향하자니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질까 걱정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서글픈 생각이 밀려드는데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 깊은 밤 장탄식하는 나그네의 한숨만 길어진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