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객지의 밤 가을의 상념
[가슴으로 읽는 한시] 객지의 밤 가을의 상념
旅夜秋思(려야추사)
廢卷坐蟲聲(폐권좌충성) 秋宵已數更(추소이수경) 節物侵鄕色(절물침향색) 燈光入客情(등광입객정) 遠學悲慈母(원학비자모) 歸耕愧友生(귀경괴우생) 惻惻無誰語(측측무수어) 長歌激不平(장가격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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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의 밤 가을의 상념
책을 덮고 앉았더니 풀벌레 우는 소리 가을밤은 한참 전에 자정을 넘겼다. 이 고장 풍경은 가을빛에 물들었고 나그네 심사는 등불빛에 젖어든다. 멀리 떠나 공부하자니 어머니 불쌍하고 돌아가 농사를 짓자니 친구 보기 창피하다. 서글픈 마음 누구에게 말을 걸까? 불평이 솟구치는 노래 길어만 간다. |
▲일러스트 : 김성규
조선 정조·순조 연간의 선비 수산(睡山) 이우신(李友信·1762~1822)이 가을철 여행 중에 썼다. 아마도 집을 떠나 공부하러 멀리 가던 길이었던가 보다. 여관에 앉아 책을 펼쳤더니 마음이 싱숭생숭, 풀벌레 소리 듣다 보니 밤이 벌써 깊다. 창밖 너머는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이 좋은 철에 객지에서 등불을 마주하니 제쳐두고 있던 고민과 갈등이 더 부푼다. 출세하려면 이렇게 멀리 떠나 공부하는 것이 옳은 것 같기는 한데 나이 드신 어머니 고생은 나 몰라라 하는 짓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포기하고 귀향하자니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질까 걱정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서글픈 생각이 밀려드는데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 깊은 밤 장탄식하는 나그네의 한숨만 길어진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