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조
變調.73
무너미
2015. 10. 16. 05:13
[가슴으로 읽는 시조] 變調.73
▲일러스트 : 이철원 |
變調(변조).73
당신이 내 속에서 너무 크게 자라나면 내 영혼은 오히려 새가 되어 떠나고 당신은 또 내가 되어 창을 내기 바쁠까 눈 감고 돌아서도 훤히 뵈는 그 음성 그렇지, 내가 울어 너 꽃으로 돋아나면 우리들 기나긴 얘긴 천근일까, 만근일까
ㅡ류제하(1940~1991)
푸른 하늘을 섬기고 싶은 나날. 햇살이 아까워 밖으로 나간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져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너무 좋은 날씨 앞에선 슬며시 괴는 슬픔도 있다. 이 좋은 날을 두고 아프거나 먼저 떠난 누군가가 늑골에 스미는 것이다. |
일찍이 정형의 변조(變調)를 꾀한 시인도 많이 아프다 떠났다. 그중 맑은 연시풍의 시조 앞에 서니 투명한 행간을 새가 건너다닌다. '당신'이 너무 커지면 '내 영혼은 오히려 새가 되어 떠나고' 그러면 '당신은 또 내가 되어 창을 내기 바쁠까'라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게 더 큰 사랑일까. 이즘의 '밀당'과는 격이 다른 듯한 마음 끝에서 '내가 울어 너 꽃으로' 돋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조금씩 길어지는 가을밤, '우리들 기나긴 얘긴' 그렇게 또 피어나리. 하얗게 서리가 내릴 때까지 '천근일까, 만근일까' 재보는 것도 좋으리.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