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5. 12. 28. 11:26

[가슴으로 읽는 시] 십이월(十二月)

 

십이월(十二月)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일할(一割)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십이월(十二月).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는 심사로

네 자리를 덮히며 살거라.

 

박재삼(1933~1997)

            ▲일러스트기자 : 이철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잎사귀를 떨군 나무들이 바깥에 서 있다. 욕심을 툴툴 다 털어버린 나무들이, 마음을 비워 빈 그릇처럼 깨끗하게 된 나무들이 서 있다. 그리하여 나무들은 비록 옷을 벗고 나목(裸木)으로 섰으나 오히려 이 한천(寒天)이 포근하다.

 

삶은 우리들의 하늘에 한랭 기단을, 억센 한파를, 눈보라를 보내온다. 우리는 해()를 입고 밑질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러할 때 폭설을 뒤집어쓴 저 나무들처럼 삶을 견딜 일이다. 꽝꽝 언, 얼음 덩어리인 십이월에 서 있는 나무들처럼 삶을 견딜 일이다. 어금니를 앙다물고 인내할 일이다. 그리고 제 몸에 이불을 당겨 덮듯이 스스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 일이다. 스스로에게 연탄 같은 따뜻함을 지필 일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