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6. 1. 4. 11:30

[가슴으로 읽는 시] 전각(篆刻)

 

전각(篆刻)

 

작은 돌에 새기다가

그만 내 가슴을 쪼았다

짙게 음각된 이름

 

향기로운 계절과

우수의 한때

 

세월이

눈처럼 쌓이고

 

이름 위에 이제는

숨결이 살아

 

붉은 새살로

돋아 올랐다

 

문효치(1943~ )

            ▲일러스트 : 박상훈

 

사는 일이 어느 때에는 나무나 돌에 인장(印章)을 새기는 일인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나무나 돌 아니라 내 가슴에 잊지 않게 단단하게 이름을 새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이름을 혹은 내가 간절하게 사랑했던 이름을,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름을 새기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이름을 새기노라면 과일처럼 꽃처럼 달콤하고 향기롭고, 또 슬픈 기억의 대목에서는 먹구름처럼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마음의 토양 위에도 흰 눈은 내려 쌓였으니 오로지 그 이름에는 새 숨결만이 있을 일이다. 새해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우리의 가슴에 시냇물처럼 돌돌 흐르고, 또 눈부신 햇빛 속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깊은 눈 속에 살자.

 

문태준 시인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