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6. 1. 13. 18:53

[가슴으로 읽는 동시] 벽지를 바르며

 

벽지를 바르며

 

일요일 아침

우리 가족 벽지를 바른다

돌돌 감긴 벽지를 펼치니

화들짝 피어나는 꽃무늬

 

새해에는 넓은 집으로

이사할 거라던 어머니

이사 대신

누렇게 바래 버린 벽지 위에

새하얀 꽃무늬 벽지를 바른다

우리 가족 서투른 도배는

꽃무늬가 자꾸 어긋나고

쭈글쭈글 오그라들어도 신이 났다

 

한나절 도배를 하고 돌아보니

벽마다 활짝 핀 꽃송이

우리 가족 웃음 송이

하늘도 새로 도배를 했는지

구름무늬 푸른 벽지를 두르고

창문 가득히 푸르게 비쳐온다

 

고광근 (1963~ )

일러스트 : 이철원

 

어머니는 새해에는 넓은 집으로 이사할 거라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이사 대신 가족들은 누렇게 바랜 벽지에 '새하얀 꽃무늬 벽지'를 바르는 일에 나섰다. 그러나 벽지 바르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 꽃무늬가 자꾸 어긋나고 쭈글쭈글 오그라든다. 그래도 온 가족은 새로 벽지 바르는 일에 신이 났다.

 

한나절 가족들이 힘들게 바른 꽃무늬 벽지. 그 벽지에 어머니는 새 달력을 걸었으리라. 그리고 가족들은 새 달력을 쳐다보며 저마다 올해 할 일들을 생각했으리라. 이 동시처럼 올해는 하늘도 새로 벽지를 바르고 창문 가득히 푸르게 비쳐오는 집마다 행복과 웃음이 가득 넘쳤으면 좋겠다.

 

이준관 아동문학가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