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6. 3. 25. 09:25

[가슴으로 읽는 시조] 어떤 동거


▲일러스트 : 이철원

어떤 동거

 

시골은 한낮에도 한밤인 듯 적막하다

개날에 한번 닭날에 한번 순찰하듯 들르면

어머닌

잠들어 계시고

TV 혼자 떠들고 있다

 

-어머니 텔레비소리 시끄럽지 않으꽈?

-혼자 시난 벗 삼아 느량 틀어 노암쪄

고향엔

구순 노모가

바보상자와 사신다

 

임태진(1963~ )



'느량'''의 제주어지만 설명 없이도 알 만하다. 토박이들의 토속어 대화는 외국어 같건만 시에서는 사투리가 말맛을 제대로 살린다. 지금쯤 노란 꽃밭이 되었을 유채꽃섬 곳곳 올레에는 한껏 물든 제주말들이 바람을 타고 넘나들겠다.

 

몸값이 날로 치솟는 제주도. 중국인 등 외지인이 몰려들며 외국어도 심심찮게 오가는 국제적 섬이 됐다. 하지만 마을 어딘가에는 여전히 'TV 혼자' 떠드는 집이 있다. '한낮에도 한밤인 듯 적막'하니 TV'벗 삼아 느량 틀어' 놓는 여생. 마을이 통째 사라져가는 판에 그나마도 아직은 나은 편이랄까.

 

'구순 노모가' TV와 동거 중인 시골집. 소방수 아들은 가끔 '순찰하듯' 들여다볼 뿐, 딱히 꺼드릴 게 없나 보다. 순찰이라도 구순히 할 수 있어 다행이겠지만. 졸음 늘어지는 봄날, 뒤따르는 꽃바람 순찰에 향도 한층 깊어지리.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