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6. 5. 20. 07:07
[가슴으로 읽는 시조] 얼굴이불
▲일러스트 : 이철원 |
얼굴이불
쌈지공원 벤치에 길게 누운 누굴까 추락 탈선 화재 충돌… 아우성치는 신문을 덮고도 코나팔 불어가면서 쏴다니는 단잠세상은 어딜까
코나팔 곡조 맞춰 얼굴이불도 들썩거린다 옆자리 할머니들도 손 마스크 하며 웃고 유모차 내린 아기도 까치발로 걷는데
난데없는 우레 번개는 팡파르에 조명탄까지라 달려와 베갯머리부터 서둘러 정리한다 책이불 다 걷어내고 묶은 신문지 수북하게
―유안진(1941~ )
'얼굴이불'… 뭐든 얼굴을 덮으면 그게 얼굴이불이겠다. '아우성치는 신문을 덮고도/코나팔 불어가'며 잠든 저들은 누구의 가족일까. 무슨 이름 하나씩 붙여 |
가족을 자꾸 돌아보게 하는 오월이라 그런 모습도 더 밟힌다. 가족은 어디 두고 공원에서 안하무인 '단잠'에 들었을까.
'코나팔 곡조 맞춰' 들썩거리는 '얼굴이불'. 웃음을 깨물며 에둘러도 짠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상황을 정리하는 '난데없는 우레 번개'. 곧바로 '책이불 다 걷어내고' 보니 '묶은 신문지'만 '수북'하다. 그 '아우성' 신문지들이 다 우리의 얼굴이불이었던가. 또 다른 자화상만 같은 도처의 얼굴이불이 뜨끈하다. 후안무치(厚顔無恥)마다 씌우고 싶었건만….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