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6. 6. 3. 09:07

[가슴으로 읽는 시조] · · ·



▲일러스트 :이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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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울까 차양 달고 추울까 매트 깔고

오감 자극 딸랑이 지능발달 모빌까지

동화 속 꽃대궐 같은 아기들의 유모차

 

강아지 끙끙대자, 엄마가 안아줄까?

개 닮은 중년부인 쩔쩔매며 둥기둥기

검은 색 도글라스까지 최신형 개 유모차

 

벽돌 한 장 태우고 그 무게 반려 삼아

 

배를 얹어 밀고 가는 할머니의 헌 유모차

변명을 늘어놓느라 바람도 숨이 차다

 

이은주(1965~ )

도글라스(Dog+Sunglasses)는 애견용 선글라스. '오뉴월 개팔자'란 말도 있지만 '상팔자' 개는 공원만 가도 널렸다. '반려'가 된 다른 종(). 그럼에도 누구나

웃어주는 아기 유모차와 달리 개 유모차에는 찌푸림이 더러 보인다. '도글라스까지' 호강 넘치는 반면에 유기견도 많으니 시선이 복잡한 것이다. 그런 중에 더 길게 남는 것은 '할머니의 헌 유모차'.

 

유모차 세 대 차이가 세대 차이의 간극으로 짚이는 우리 사회의 쓸쓸한 이면. 유모차에 기대서라도 바깥바람 쐬는 게 다행이랄까. '벽돌 한 장'의 무게를 '반려 삼아' 가는 노년이 길기만 하다. 우리가 '변명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앓는 소리들은 깊어가듯.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