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한시
비 갠 저녁
무너미
2016. 7. 16. 07:00
[가슴으로 읽는 한시] 비 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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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저녁
창문 열고 발을 올려 비 갠 저녁 내다보니 여름 하늘 맑고 파래 가을 온 듯 선선하다.
벌써 골목에는 덜컹덜컹 나무 실은 수레 들어왔고 무논에는 이제 한창 모심는 기구 다니겠군.
푸른 산은 허공을 밀쳐 옛 빛깔로 돌아왔고 고운 노을은 나무를 잠가 아쉬운 정을 가라앉힌다.
오늘 밤은 띠를 풀고 잠을 자러 서둘지 말고 성안 가득한 은하수를 마냥 앉아 기다려야지. |
晩晴(만청)
拓戶鉤簾愛晩晴(탁호구렴애만청) 夏天澄綠似秋生(하천징록사추생)
已聞巷裏樵車入(이문항리초차입) 正憶田間秧馬行(정억전간앙마행)
靑嶂排空回舊色(청장배공회구색) 綺霞沈樹澹餘情(기하침수담여정)
今宵解帶不須早(금소해대불수조) 坐待星河拂滿城(좌대성하불만성) |
▲일러스트 : 송준영
구한말의 시인 명미당(明美堂)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 여름철 비가 개고 난 뒤의 저녁 풍경과 감회를 썼다. 비가 개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가을이 불쑥 온 듯 청량하다. 날이 개자마자 나뭇짐을 실은 달구지가 벌써 골목길을 다니며 나무를 판다. 들녘 논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서두를 게다. 허공을 밀치며 푸른 산은 짙푸른 빛깔을 회복했고, 노을은 하루해가 가는 아쉬운 마음인 양 저문다. 여름날 이렇게 상쾌한 기분을 맛보기 참 힘들다. 잠을 자지 않더라도 서울의 밤하늘을 맑게 뒤덮을 은하수를 꼭 봐야겠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