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6. 7. 18. 06:57

[가슴으로 읽는 시]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몇 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송경동(1967~ )

              일러스트 : 이철원


묵은 시간은 없다. 늙은 채 오는 시간도 없다. 매 순간 시간은 샘처럼 솟아 나온다. 매 순간 시간의 꽃봉오리는 피어난다. 그래서 한 시인은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라고 노래했다. 우리가 사는 매 순간은 맨 처음이며 우리는 매일매일 여린 초록과도 같은 아침을 맞는다. 아침에는 우리에게 큰 가능성이 열려 있다. 우리는 아침에 여러 갈래로 갈린 길 위에 선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또한 많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 더 큰 희망의 세계로의 출로가 열린다. 밤의 시간에 낮은 이미 시작된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의욕, 그리고 광야와도 같은 담대한 정신이다.

 

문태준 시인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