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6. 11. 9. 11:05

[가슴으로 읽는 동시] 화장실 청소

 

화장실 청소

 

아 글쎄

이렇게 냄새나는 화장실을

날 보고 청소하래.

 

아 글쎄

저 지저분한 변기들을

날 보고 닦으래요.

 

집에선 손끝 하나 까딱 않는 귀여운 말괄량이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하신 이 몸에게

 

아 글쎄 하필이면

냄새나는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거야!

 

"누군가는 해야겠지."

투덜대는 등 뒤로 들려오는 굵은 목소리.

 

아차! 선생님께서 다 들으셨구나.

축 처진 발걸음으로 화장실을 들어서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느새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변기를 힘차게 닦고 계신다.

 

정동현 (1962~)

일러스트 : 이철원


부모는 아이에게 '공부만 하면 된다'면서 일을 시키지 않는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찌 냄새 나는 화장실 청소를 할까. 모두를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것이 '참공부'라는 것을 어른들은 왜 모를까.

 

'누군가는 해야겠지' 하는 굵은 목소리의 선생님. 고무장갑 낀 손으로 변기를 힘차게 닦으시는 선생님. 그렇게 몸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건강할까. 말보다는 먼저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어른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준관 아동문학가

[출처]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