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춤추는 은하
춤추는 은하
공중에 눈송이를 날리고 있다. 마당 가득 하얗게 살구꽃 흩날리던 정선군 민박집의 아침이 8층 높이로 올라! 새 꽃밭 찾아낸 벌들이 8자 형 그리며 춤추듯 눈송이들이 느슨한 돌개바람 타고 타원을 그리며 춤춘다. 살랑대는 저 춤사위, 지구의 것 같지 않군. 그래 은하의 춤! 은하 속 어디에선가 꽃 피운 행성 하나 찾아냈다는 건가? 잠깐, 기억들 다 어디 갔지? 뇌 속이 물 뿌린 듯 고요해지고, 살랑대며 춤추는 은하가 천천히 돌면서 다가온다. 나도 모르게 몸을 내민다.
―황동규(1938~)('연옥의 봄', 문학과지성사, 2016 |
'8층' 발코니에서 '8자 형'으로 '흥'겹게 날리는 눈송이들을 본다. 정선 민박집 아침마당에 흩날렸던 봄날의 살구꽃 잎에, 새 꽃밭을 찾아낸 벌들의 붕붕거림이 겹쳐져서, 내리는 흰 눈은 '꽃 피운 행성'을 찾아가는 은하의 춤이 된다. 몸을 찾아낸 은하가 춤을 추면서 (내게) 다가온다니, 그 춤사위가 지구의 것 같지 않다니, 몸을 내미는 베란다 밖이 어쩐지 이 세상 밖이나 이 시간 밖일 것만 같다.
'팔팔(88)'한 삶이란, 잠깐의 기억들 흩날리다 문득 뇌 속이 물 뿌린 듯 고요해지는, 그렇게 '살랑대는' 춤이겠다. 가볍고 흥겨워서, 포근하고 매혹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몸을 내밀"도록 하는! 살구꽃에서 벌로 다시 은하의 춤으로 개진하는 흰 눈의 행적이 한 생의 궤적만 같다. '살랑대는'을 '사랑대는'으로 오독했다. 힘차게 달려라, '사랑대는 춤사위', 은하의 춤 99로!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