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7. 2. 13. 08:58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주름
▲일러스트 : 이철원 | 주름
눈썹 사이 내 천(川)이 사라지질 않는다아
이가 문질러 펴보다 가고 겨울 햇살 너무 밝은데
누가 칼질한 자국일까 꿈에 가던 길들의 여운일까
이젠 내가 주름을 잡아보려고 흐르는 내(川) 속으로 뛰어든다
―조원규(1963∼ )('난간', 시용, 2013) |
칼질인 듯 베인 눈맞춤 자국이 미간의 내천(川)자주름이고, 세 번의 삼재가 남긴 영광의 상처가 이마의 삼(三)자주름이고, 헤픈 웃음 뒤로 파인 벼랑이 입가의 팔(八)자주름이다. 시간은 내 천(川)처럼 흐르고, 주름은 내 천(川)처럼 고인다.
고인 주름은 늘 길처럼 뻗어간다. 밤과 꿈과 낮이 고였다 뻗어간다. 마음이 망가졌거나 기억이 지워졌거나, 다함 없는 약속들을 결코 잊을 수 없었거나, 물의 속도로 흐르거나 심연의 깊이로 파이거나…. 누가 칼을 휘두르고 누가 꿈길에 들어 자꾸만 오늘의 나를 훔쳐가는가.
시인의 '눈밭'이라는 시에 '눈밭' 대신 '주름'을 넣어 읽어본다. '두 무릎으로 엉금엉금/ 주름을 기면서 통곡을 한다// 깨고 보면 주름 이전도/ 주름 다음의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 희고 넓은 주름,/ 대체 어디쯤이었을까// 사라지는 누군가가/ 따뜻한 눈물 흘리던 그곳.' 그렇다. 주름은, 이제 희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