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벌써 삼월이고
무너미
2017. 3. 27. 10:37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벌써 삼월이고
▲일러스트 : 김성규 | 벌써 삼월이고
벌써 삼월이고 벌써 구월이다.
슬퍼하지 말 것.
책 한 장이 넘어가고 술 한 잔이 넘어갔다.
목메이지 말 것.
노래하고 노래할 것.
―정현종(1939∼ ) ('시인수첩', 2017년 봄호) |
문득 삼월이었는데 벌써 사월을 향해 간다. 지나간 것들은 돌이킬 수 없고 모든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흐르는 게 강물뿐이겠는가. 역사도 목숨도 사랑도 노래도 흐른다. 시간에 발을 담근 것들은 휘리릭 휘리릭, 술 술, 잘도 흐른다. 시간 자체는 밑도 끝도 없지만 시간에 속한 것들은 제 나름의 유효기간이 있어서 '시간은 슬픔'이고 '시간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슬퍼하지 말 것, 목메지도 말 것!
삼월이 넘어간다. 이제 곧 장미도 밤꽃도 필 것이고, 금세 구월도 넘어갈 것이다. 휘리릭 휘리릭, 술 술. 우리에겐 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고, 사랑할 사람도 많지 않다. 사랑을 노래하기 위해 주어진 얼마간의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일 것이다. 그러니 김수영의 시를 빌려 이렇게 얘기하겠다. 시간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나는 사랑의 노래를 발견하겠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