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7. 4. 10. 08:04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나잇값

 

나잇값

 

나잇값을 해라, 나이 헛먹었나

그런 말이 있다.

나잇값이 헐값이 아니라는 얘기다.

참 비싼 대가를 치르며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그걸 돈으로 환산하거나 권력으로 대체하거나

명예로 계산할 수는 없다.

나이는 나이대로 상당한 값이 나가는 건

동서고금의 진리다.

함부로 대하다간 큰 코 다친다.

어떤 경우에도

나이가 많은 것은 적은 것보다는 값이 더 나간다.

깎는다고 깎여지지도 않을뿐더러

함부로 값을 매기려고 하거나

헐값에 넘기려고 해서도 안 된다.

어떤 값보다도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이니

늘 소중하게 지니고 살다가

저승으로 갈 적에 노잣돈으로 삼아야 한다.

 

최일화(1949~ ) ('문학청춘' 2017년 봄호)

나이는 그냥 저절로 잘도 먹고 거꾸로 먹기도 한다. 따박따박 꾸역꾸역 먹다 보니, 푼돈이나 공짜로 저평가되기도 하고 헐값이나 꼴값으로 급락하기도 한다. '나잇값 해라' '나잇값 못한다'는 말은 나잇값 독촉인 셈이다. '내 나이가 몇인데' '나이가 있는데' 하며 사는 사람도 있고,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야 가라' 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나잇값은 모르고 사는 게 제값이다. 그러니 'Let it be my age!'로 살다, 나잇값 독촉을 받거든 카드로 돌려막고 대출로 당겨 쓰자. 젊어서부터 나잇값 해서 나이 들어서는 역모기지론처럼 적립식으로 찾아 쓰면 금상첨화겠지만.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출처 :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