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7. 6. 12. 08:36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우편

 

우편

 

모든 것은 이미 배달되었다.

그것이 늙은 우편배달부들의 결론,

 

당신이 입을 벌려 말하기 전에 내가

모든 말을 들었던 것과 같이

 

같은 계절이 된 식물들

외로운 지폐를 세는 은행원들

먼 고백에 중독된 연인들

그 순간

 

누가 구름의 초인종을 눌렀다.

뜨거운 손과 발을 배달하고 있다.

우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바로 그 계절로

 

단 하나의 답장이 도착할 것이다.

조금 더 잔인한 방식으로

 

이장욱(1968~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사, 2016)

늙은 집배원은 매일매일, 참으로 오랜 시간을, 이 세상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배달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말한다. 모든 것은 이미 배달되었다고. 초인종이 울리고, 정기적인 식사, 같은 목소리의 통화, 중독된 고백, 비슷한 슬픔, 잔인한 단 하나의 답장그렇게 나는 배달되었다, 고로 존재한다, 이 늙은 계절에. 나는 이미 쓰였고 나는 그것을 따라 산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성경도 기록하고 있다, 단 한 권의 책은 이미 쓰였으며, 모든 말들은 다 발설되었다고. 모든 것은 예정되었고, 예정된 단 하나의 답장을 향해 간다.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다. 끝이 있어 다행한 일이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출처 :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