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7. 7. 10. 08:40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천남성이라는 풀



천남성이라는 풀

 

꽃의 색깔이 잎과 같은 초록색인 천남성은

외할머니의 남은 것 중 몸에 가장 가깝지만

그 몸이 더 맑다

비 그친 하늘가에서 팔십 년을 보냈다면,

옆구리에 패일 찬샘처럼

잎이 변해 깔때기같이 길게 구부러진 초록 꽃잎은

이제 뻣뻣해지는 손이나 발이 생각해내는 젊은 살결처럼

저 피안에서나 다시 사용할 노잣돈처럼

숨은 노래를 다시 감추고 있다, 그 노래는

초록 꽃잎 안의 노란색 암술, 놀랍게도

꽃이름은 별의 이름, 알고 보면

잎이나 꽃이나 초록인 것처럼

외할머니는 사십 년 전 내 어릴 적에도 할머니였다

 

송재학(1955~ )('기억들', 세계사, 2001)

천남성(天南星)2월경에 남쪽 지평선 가까이에서 잠깐 볼 수 있는 별이라서 남극성(南極星), 남극노인성이라 한다. 사람의 수명을 관장해 수성(壽星)이라고도 하는데 이 별을 보면 장수하고 이 별이 나타나면 태평성대 한다고 믿었다. 이 별 이름이 붙여진 풀꽃이 있다. 꽃이 초록인데 잎이 변해 꽃잎이 되었다. 독성이 있는 데다 뱀 머리나 호랑이 발바닥을 닮은 데서도 알 수 있듯, 꽃 같지 않은 꽃이다. 그 꽃에서 시인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였던, 자신으로 인해 할머니가 되었던 사십 년 전부터의 외할머니를 본다. 기다란 물주머니처럼 생겼다니 옆구리에 찬샘 파이듯 살았을 것이다, 외할머니도, 천남성꽃도. 젊은 살결을 숨기고 저승 노잣돈을 품은 듯 시리고 푸르게 살았을 것이다. 그늘지고 습기 찬 곳 어딘가에 천남성꽃 피어 있겠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출처 :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