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7. 8. 21. 09:24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서늘함
작아진 몸을 눕힐 주소 하나, 낮아진 몸을 의지할 지팡이 하나, 굼뜬 몸을 일으켜 세워줄 마음 하나, 주먹만 한 위를 채워줄 언 밥 한 그릇으로 압축되는 이 한 삶이 서늘하다. 그 하루하루가 '쌀 한 톨만'하다니 써늘하기도 하다. 엄마 배 속으로도 족했던 몸이었으니 '발 닿고 머리 닿는/ 복숭아씨만 한 방'이면 족할 것이다. 실제로도 시인은 북촌에 '딱 명함 한 장만 한 한옥 대문'에 '공일당(空日堂)'이라는 문패를 걸고 사신다 했다. 사랑이든 욕망이든 일상이든 낮고 작고 가벼워져야 크고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문패에 담았으리라.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