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7. 8. 24. 08:22


[가슴으로 읽는 동시] 아가가 미끄러졌다



아가가 미끄러졌다

 

아가가

마루에서 공차다 미끄러져

앙앙앙.

 

"아가 다쳤어?"

 

엄마가 주방에서 달려간다

아빠가 신문 보다 달려간다

할머니가 화분에 물주다 달려간다

나도 텔레비전 보다 달려간다.

 

박예자(1939~ )

난리 났다. 집안이 비상이다. 아가의 울음에 집안이 흔들린다. 엄마, 아빠, 할머니가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하던 일 제쳐놓고 달려간다. 이럴 때 아가는 왕이나 다름없다. , 왕이고 말고. 울음까지도 귀여운 꼬마 왕. 앙앙앙, 나도 놀라서 텔레비전 보다가 달려간다. 아가의 울음이 식구를 자석처럼 빨아들인다. 아가의 존재는 가족을 한데 묶는 강한 끈이다.

 

꾸밈없는 소박한 몇줄의 시에서 아가의 소중함이 빛나게 읽힌다. 보물 도자기 같아 보인다. 어느 고등학교 교장 손녀가 교장이 애지중지하는 도자기를 그만 떨어뜨려 깨트렸다. 엄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를 마구 야단치고 있는데, 퇴근한 교장이 그 광경을 보고 도리어 며느리를 야단쳤다. "항아리야 새로 빚을 수 있지만 손녀는 우주에 하나밖에 없지 않으냐"!

 

박두순 동시작가

출처 :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