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7. 11. 20. 20:41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달밤
김수영이 1959년에 쓴 시다. 4·19 직전이었고, 마흔 직전의(지금 나이로 환산하면 쉰아홉쯤에 해당하는) 아홉수에 갱년기였을 게다. 달이야 밝든 말든, 방황도 책도 몽상도 꿈도 '필요가 없어'져 빨리 잠을 자는 습관이 들었나 보다. 삼십대 중반에 썼던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거미')라는 시와 짝을 이루는데, 그때 이미 시인은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고 한다. 필요가 없어진 것이 많아졌다는 건 피로를 알게 되었다는 것, 그건 슬픔을 살게 되었다는 것, 늙었다는 것!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건 필요해서 온 것이지 지나친 피로에 지쳐 살려고 온 건 아니라는 것!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