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미
2018. 1. 8. 20:27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노병
전쟁은 전쟁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도 없는 삶이 없기에 싸워야 할 적이 없는 삶도 없다. "태어나서 좋았다고, 살게 돼서 좋았다고, 오래 살아서 좋았다"고 말하는 시인은 삶과 사랑과 시의 노병임을 자처한다. 노병이되 여전한 우리 시단의 '현역 병사'이기에, 병무가 삶이고 매일매일 기록하는 병무일지가 시다. 현역으로 늙는다는 건 역경을 경력으로, 수고를 고수로 바꾸는 연금술의 체득 과정이다. "(구십) 평생을 통해 읽어갈 책을 오래 살았기에 상당히 뒷부분까지 읽었고, 젊은이들이 아직까지 읽지 못한 심오한 문장을 읽어왔기에 앞으로 내 시는 더 좋아질 것이다"라며, "이 세상 끝날 때까지 희망을 노래하는 노병이 되어 삶을 살고 싶다"는 졸수(卒壽) 시인의 고백이 위풍당당하다. '노인 헌장'으로 불러 마땅하다. 최고(最古)가 최고(最高)가 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