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홀로된 노인의 삶
3년 전 마누라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함께 살자는 아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나는 아늑하고 편안한 아들네 집에서 학교 간 손자들과 직장에 나간 아들과 며느리가 돌아오는 저녁 때를 기다렸다.
아이들이 있어 집안 분위기가 활기찰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손자 녀석들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늘 숙제하느라 바빴다. 하루에 한 번 저녁시간에 온 식구가 모였는데 식사 분위기는 대체로 딱딱했다.
가끔 어린 손자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얘기하며 깔깔대면제 어미가 "할아버지 앞에서 떠들면 못 써." 하고 야단을 쳤다. 사실 나는 녀석들이 지껄이는 일이 즐거웠는데 말이다.
차를 마실 때라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으련만 아들이 "아버님, 이제 늦었습니다. 그만 주무시지요." 하고 말하면 나는 잠이 오지 않아도 내 방에 가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 노인 몇 사람과 오랜만에 즐겁게 마작을 하다가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저녁에 퇴근한 며느리에게 그 노인들 식사도 같이부탁했는데 며느리는 진수성찬을 차려 올렸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아들이 미리 말도 없이 손님을 청하면 어떡하냐며 "앞으로 그러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자주 배가 고팠다. 금방 밥을 먹어도 또 배가 고팠는데, 냉장고에는내가 먹을 만한 간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늙은 행상한테서 만두를 세 상자씩 사먹었다. 그 뒤로는 뱃속이 편안했고, 하루 종일 목소리를 쓰지 않는 나로서는 만두장수와 얘기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어느날 만두장수는 내게 줄 거스름돈이 모자라 나중에 며느리를 통해서 돈을 건네주었는데 며느리는"아버님이 이렇게 직접 사다 드시면 사람들이 우리가 아버님을 잘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갈증이 나고 자주 오줌이 마려운 증세가 더 심해져 병원에 갔더니당뇨병이라고 했다. 아들은 "너무 많이 드셔서 그 병에 걸린 겁니다."라고 충고했다. 며칠 뒤, 내 몸은 회복됐지만 마음은 뒤숭숭했다. 그러다 문득 마누라 장례식 때 보고 여태 만나지 못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때 친구는 장례식장에서 양로원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같은 연배의 늙은이들과 산책하고 요리도 하고 밤 늦게까지 얘기도 나눈다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들어갈 방도 있냐고 묻자 친구는 "자네는 아들과 더불어 만년을 편하게 즐기게." 라고 말했다.
나는 그 친구의 말에 공감했지만 이미 3년을 편하게 보냈으니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꾸렸다. 옛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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