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태극기
초월의 비장(秘藏)
<KBS1 TV 3.1절 특집 다큐멘터리를 보고 >
천년고찰 진관사,
9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태극기!!
그것은 백초월의 비장(秘藏)이었다!
역사 속에 묻힌 대선사 백초월.
눈보라가 치기 전에 매화향기가 오는 것을 먼저 알았던 그의 독립에 대한 염원이 이제 우리 가슴에 태극기를 꽂는다!!
한일 강제 병합 100년, 우리들의 마음속엔 무엇이 남아있는가?
2009년 5월, 천년 고찰 진관사 칠성각 해체 복원 작업 중 불단 밑에서 비밀스러운 물건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태극기와 독립운동계 신문 16점이었다.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는 90여 년 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했던 그 모양 그대로였다. 뿐만 아니라 실물이 발견된 적 없던 “자유신종보”와,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발간한 것으로 알려진 항일 지하신문 “신대한”의 2호, 3호는 역사상 최초로 발견된 유물이었다.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 대한불교 조계종 진관사의 봄 모습 (사진출처:진관사)









■ 주요내용
1) 6.25 전란까지 이겨낸 정체불명의 유물 발견되다.
서울시 진관외동 삼각산 자락의 천년고찰 진관사. 2009년 5월 새로운 역사를 발견됐다.
사찰에서 발견된 최초의 태극기. 그것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했던 그 모양 그대로, 규격에 맞춰진 태극기였다. 또 16점의 독립운동계 신문 중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독립의식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신대한」을 비롯해, 「독립신문」과 최초로 발견된「자유신종보」등이 있어, 당시 상해 임시정부와 서울과의 연락이 긴밀하게 이뤄지고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유물을 처음 받아 본 진관사 총무국장 법해스님은 과연 이것이 왜 여기에 90년 동안 묻혀 있었던 것인지, 누가 왜 이곳에 숨겨둔 것인지, 역사 속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 본다.
2) 역사가 잊은 이름, 백. 초. 월.
독립운동을 벌인 스님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한용운, 백용성 정도다. 그러나 여기 또 한 명의 스님이 있다. 이름 백초월. 그는 일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1944년 6월 옥사하였다. 그러나 진관사에서 태극기가 발견되기 전까지 그는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단지, 조상의 발자취를 찾는 유족과 그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외 엔 그를 기억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태극기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법해 스님은 뼈 한 점 남겨 놓지 않은 그를 만나는데... 학력이 출중한 대선사였던 백초월은 중앙학림 내 한국민단본부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불교 법회를 통해 융통한 돈을 임시정부지원금으로 송금하는가 하면. 혁신공보를 발행하는 등 굵직한 독립운동을 이끌어 낸 인물이다. 그를 기억하는 노스님들의 구술과 일본 경찰의 비밀 첩보문건의 통해, 그의 궤적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3) 말린 거북과 이야기를 나누던, 미치광이 백초월.
요시찰인들의 괴롭힘을 피하는 방법으로 죽은 거북이를 방안에 비치하여 두고 내방을 하면 묻는 말엔 대답하지 않고 죽은 거북이와 자문자답하여 정신이상자로 취급하여 문답을 피했다...
- 청주용화사 前주지 윤벽산 스님의 구술자료 중-
그러나 그는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미치광이인척 죽은 거북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인한 행동을 하였다. 그런가하면, 한 여름에 모기가 물어도 모르고 추운 겨울 문을 열어 두고도 모른 채,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사연인 즉, 인두로 머리를 지지는 등 일제의 모진 고문 때문에 온전치 못한 건강 때문이었다고 한다.
옥사 중에도 너희 왜 놈들이 미쳐 남의 나라 땅을 강점 하는 것이지,
내가 미쳤단 말이냐? 너희가 미쳤지! 하고 서릿발 위세로 일본 순사를 호령하던 그
- 조영암 스님의 구술자료 중 -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올곧은 민족정신과 기개를 굽히지 않았던 그는, 목숨으로 독립의 염원과 민족적 자존심을 지켜냈다. 그렇듯 한 평생을 바쳐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그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6월, 청주형무소에서 66세의 삶을 마감하는데... 단순히 위험 때문이었다면, 소각해도 됐을 태극기와 신문들을 불단 밑에 숨겼던 그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90년 만에 빛을 본 태극기를 펴고, 무엇을 기려야 할 것인가?
4) 진관사, 독립운동 근거지로 부상하다.
북한산 비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만나는 천년 고찰 진관사. 총무국장 법해스님은 대선배인 백초월의 궤적을 찾아내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진관사가 중요한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는 것이다.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산 속에 숨겨져 있는 지형적인 조건과 독립정신이 투철한 초월스님이 기거하는 까닭에 진관사는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태극기가 발견되면서, 오대산의 월정사와 함께 진관사가 독립운동의 본거지였음이 입증된 셈이다. 앞으로 진관사는 그의 뜻을 기리는 작은 박물관을 만들 예정이어서, 또 하나의 독립성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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