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사 쌍사자 석등 / 보물 제 282호 고려시대 고달사 쌍사자 석등(높이 3m, 보물 282호·사진)은 원래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고달사 터에 있던 것을 1959년 경복궁으로 옮겨온 후 현재(용산 국립박물관)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두마리 쌍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석등입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러한 형태의 석등이 등장하지만, 이 고달사 석등은 다른 쌍사자 석등과 달리 웅크린 사자가 불발기집을 받치고 있어 이채롭다. 이 석등은 고달사가 우리나라 3대 성원의 하나인 고달원으로 명성을 떨치던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달사 쌍사자 석등은 2000년 6월9일 고달사 절터를 전면적으로 발굴 조사를 하던 중에 쌍사자 석등이 원래 놓여 있던 지대석도 드러나고 또 잃어버렸던 옥개석도 찾아내 지금은 제대로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경복궁 옆 잔디밭에 있다가 지금은 용산 국립 박물관 야외에 전시 되어 있습니다.
고달사는 나말여초에 창건된 선종 사찰의 하나로 이후 법안종(法安宗)과 천태종(天台宗)의 영향을 받으며 몇 차례의 중건을 거듭하다 17세기를 전후해 폐사된 것으로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추정되고 있다. 고달사 터는 사적 제382호로 지정돼 있으며 현재 부도(국보 제4호), 석불대좌(보물 제8호), 원종대사혜진탑(보물 제7호), 원종대사혜진탑비(보물 제6호) 등의 조형미가 뛰어난 석조물들이 남아 있다.
이 고달사 쌍사자 석등의 사연도 많습니다. 고달사 절터 부근에 살던 이기모라는 분에게 조선총독부(소화 13년)가 국보급으로 감정을 한 후 잠시 위촉하였는데, 해방 전후로 방치 되어 오다가 조선총독부 시대의 문헌을 기초로 해서 이를 새 국보로 지정 행방을 찾게 되는데. 이기모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이 그 내력을 모르고서 , 동원 예식부 주인인 정모씨에게 당시 3만 8천으로 팔아버렸다. 뒤 늦게 안 당국은 소유가 국가에 있다고 하고, 정모씨는 버티고, 결국은 찾게 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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