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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행 (강화도 보문사 김포함상공원)

무너미 2011. 10. 20. 07:04

 

 

 

 

 

우리나라 3대 해상 기도 도량인 보문사 유래

강화 석모도 보문사(普門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629번지에 위치한 사찰로서 신라 선덕여왕 때(635)에 희정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지었다고 한다.

예부터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이곳 산 이름을 낙가산으로 짖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뜻하여 절 이름을 보문사라 불렀다고 한다. 창건이후 신라시대 역사는 전해오지 않고, 조선후기부터 전해지고 있다.

순조때(1812) 중건되었고, 고종 때 경산이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전을 건조하였다.

삼십년 뒤 명성황후의 지시로 객실을 중건하였고, 근래에 이르러 범종각과 요사채를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동해 낙산사(양양), 남해 보리암(금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 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절을 처음 짓고 한 십여 년 후, 근처 마을 한 어부가 바다 속에서 그물에 걸린 돌덩이 이십여 개를 건져 올렸다.

고기인줄 알았던 어부는 실망하고 바다로 던져버렸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그 돌이 올라왔다. 귀찮아진 그는 이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천축국에서 보낸 귀중한 불상을 버렸다며 크게 꾸짖고, 내일 다시 건지거든 곱게 가지고와 명산에 잘 봉안하도록 일렀다. 이튿날 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꿈에 본 스님이 시키는 대로 이 쪽 산으로 옮기는데 이 절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사람모습의 돌덩이가 무거워져 더 이상 옮길 수 없게 되었다.

어부는 바로 이곳이 영험한 장소구나 생각하여 굴 안에다 단을 만들어 모셨다 .

이후 근처에 법당을 지어 이 석불을 모시면서 절과 마을이 차츰 번성해 갔다고 한다.

33관음탑과 500나한전

500개나 되는 불상에서 똑같은 얼굴이 없다는게 정말 신기 했다..

 

 

보문사 석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화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 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 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때 어떤 어부가 고기잡이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그대로 모셨더니 부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보문사 석실 앞으로 보문사 맷돌과 보문사 향나무가 있다.

보문사에는 나한상을 모신 보문동천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보문사 승려와 수도사들이 300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때 사용했던 맷돌이 아직도 남아있다.

보문사 맷돌은 크기가 지름 69cm, 두께 20cm로 일반용 맷돌보다

두배정도 큰 화강암 맷돌이다.

 

 

 

 

 

 

 

 

 

 

 

본격적인 관람은 배 안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되는데

2006년 12월 퇴역한 운봉함을 개조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였다

 

 

퇴역 상륙함은 2008년 5월 해군본부로부터 무상대여 승인된 해군의 운봉함으로 1944년 미국에서 건조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상륙작전에 참전하는 등 14년간 미 해군의 주력 상륙함으로 운용돼왔으며, 이후 55년 한국 해군이 인수해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등 52년간 임무를 완수하고 2006년 12월 퇴역한 길이 99.6m, 폭 15.3m, 높이 23.5m 규모의 상륙함이다.

 

함정내부는 설치된 퇴역함정 '운봉함'에 대한 연혁과 해병대 체험시설과 3D 영상관과 함정내부의 생활을 볼 수 있는 전시관 등이 조성되어 있고 외부에는 전투기, 탱크가 전시되어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안보교육 및 병영체험의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 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