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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두종가, 서백당과 무첨당

무너미 2011. 11. 14. 10:25

양동마을 두종가, 서백당과 무첨당

경주 양동 마을 흙길은 반드시 걸어야합니다. 그리고 두 종가인 월성 손씨 서백당(중요민속자료 제23호)과 여주이씨 무첨당(보물 제411호)을 찾고 문중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관가정(보물 제442호)과 향단(보물 제412호)을 보면 됩니다.

 

 

 

 

양동 서백당(良洞 書百堂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223)은 중요민속자료 제23호이고 행랑채(제23-1호),사랑채(제23-2호),안채(제23-3호),사당(제23-4호)이 부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골안 깊숙이 비교적 높은 서면(西面)기슭에 서남향으로 앉힌 집입니다.

 

서백당은 월성 손씨 대종가(大宗家)로 입향조인 양민공 손소(1433∼1484)가 건립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1463∼1529)과 그의 외손이며 동방18현(東方十八賢)으로 문묘에 배향된 회재 이언적(1491∼1553)이 태어난 곳입니다.

서백당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온전히 남아있는 살림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서백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고 고즈넉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행랑채는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간을 포함하고 있는 일자형 건물입니다. 대부분 광으로 되어 있으며 하인들이 머물렀던 방도 있습니다.

 

 

 

일자형의 대문채 안에 ㅁ자형의 안채가 있고, 사랑채 후원 뒤쪽 높은 곳에는 사당(祠堂)이 있습니다.

높이에 따른 구성으로 전체적으로 위계를 둔 건물구조를 하고 있고 종가(宗家)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입니다. 안채는 관람이 제한되어 아쉬움을 남깁니다.

 

사랑채는 일명 서백당으로도 불립니다. 서백당은 하루에 참을인(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입니다.

 

 

높은 2층 기단 위에 ㄱ자형으로 안채와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사랑채는 작은 사랑방을 모서리에 배치하여 방과 방이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는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마루통로 형식으로 꾸민 점도 특이합니다. 대청마루 앞으로는 아(亞)자형의 난간을 들렀는데 사랑방의 정(井)자살과 함께 한층 격조가 있어 보입니다. 사랑대청 옆 정원방향으로는 짤막한 상징적 담장이 있습니다.

 

 

 

 

대청마루에서 후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가옥 건립 당시인 1456년(세조 2) 손소가 직접 심은 수령 500여년 된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가 있고 조상을 모신 사당의 모습이 동시에 눈에 들어와 조상에 대한 경건함을 되새기게 하는 곳입니다.

 

 

 

 

 

무첨당(無첨堂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81)은 보물 제411호로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李彦迪)의 종가에 딸린 별당 건물로 조선 중기에 세워졌습니다.

상류 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불천위 제사, 손님접대, 휴식,책읽기등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으로 마을 서북쪽 산등성에 남향하여 있습니다.

 

무첨당으로 향하는 길은 길고 높은 토담벽을 따라갑니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동쪽에 안채, 서쪽에 별당인 무첨당을 두고, 사이에는 가파른 계단을 설치하여 사당을 배치하였습니다. 종가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통하는 곳임을 한눈에 알게 합니다.

 

 

 

 

 

 

무첨당은 ㄱ자형 평면에 온돌방, 대청, 누마루를 두었으며 둥근기둥, 네모기둥을 함께 쓴것이 특징이고 난간, 초석등도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무첨당은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건축의 기능에 충실하게 지은 건축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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