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잎, 잎
잎, 잎
낮은 山도 깊어진다. 비안개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겨울 인간의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핏줄에 붙은 살이 더러워 보인다, 잎과 잎 사이 벌거벗고 덜렁거릴 것 덜렁거리며 서 있을수록……
잎, 잎, 무성하거라 무성하거라 무성하거라 한여름 山 속에 미리 들어와 마음을 놓는다.
- 신대철(1945 ~ )
돌아보니 어느덧 녹음이 두터운 성(城)을 이루었다. 그 건너편의 풍경이 가러지니 좋다. 분명 인간 세사(世事)의 혈압을 자극하는 것이렷다. 산(山)은 인간사에 다친 마음을 치유한다. 우리는 산 속에 들어 “이곳이 나의 출처(出處)이지” 하며 안심한다. 마음속 영원한 어머니의 자리다.
나무의 연한 속잎들의 빛깔은 그대로 우리가 잃은 마음의 빛깔이다. 말의 때에 찌든 마음, 말의 노예가 된 마음, 아무런 울림이 없는 마음, 그곳에 메아리가 깃들도록, 그곳에 싹이 돋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산으로 향하곤 한다. 물소리 새소리가 찢긴 마음을 봉합한다. 모두 벗고 ‘덜렁거릴 것 덜렁거리며’ 서 있노라면 받아드리지 않았어야 했을 인간사의 유혹들도 나타난다. 치유와 반성의 자리가 바로 ‘세속’ 아닌 ‘신속’ 인 것이다. 마음 끝에 연두의 싹이 돋아난다. (조선일보 5월 21일)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슴으로 읽는 시] 파도는 (0) | 2012.05.25 |
---|---|
[가슴으로 읽는 시] 저녁에 집들은 (0) | 2012.05.23 |
[가슴으로 읽는 시] 저녁별처럼 (0) | 2012.05.18 |
[가슴으로 읽는 시] 산들 바람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0) | 2012.05.16 |
[가슴으로 읽는 시] 튤립 (0) | 2012.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