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책을 읽으며 ―못에 관한 명상 35
책을 읽으며 - 못에 관한 명상35
허리 굽은 세상 하나 건너와 잠 못 이를 때가 많아졌다 그런 밤에 누군가 돋보기 쓰고 책장을 넘긴다. 책장 문턱에 이마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플랫폼에 도착․했다. 플․ 랫․ 폼․ 에․ 플․ 랫․ 플․ ․ ․ ․ ․ ․
눈꺼풀이 활자를 띄어넘지 못해 잠시 눈 붙이면 나 아닌 것들을 모두 안경 벗고 뒷걸음치고 있었다. 오늘 무엇을 보았는가? 오가는 길밖에 보질 못했소 그렇다면 눈을 빼버려라! 깜짝 놀라 눈 뜨고 책 읽으면 주인공은 벌써 기차에서 내려 한때 우리가 살았던 도시의 페허로 걸․ 어․ 가․ 고․ 있․ 었․ 다․ ․ ․ ․ ․ ․
-김종철(1947~ )
책 속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책 속으로 길이 한 갈래 꼬부라져 들어간다. 책 속으로 바람이 불고 책 속에서 나무 한 그루 자란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나날이 온다. 그러면 우리는 책 속으로 가 본다. 우리는 늙도록 책을 끼고 살 수밖에 없다. 책에 무엇이 있던가. 글자와 단어와 문장과 단락들…. 그렇게 기차의 레일처럼 이어진 말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 책 속 문장들을 넘어서야 비로소 의미에 닿는다. 말이라고 하는 물을 다 퍼내야 잡히는 퍼덕이는 물고기. 그 환희! 의미를 관통하라는, 노경(老境)의 더듬거리는 독서 풍경이 서늘하다. (조선일보 6월 27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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